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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동화 엿보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1)

정기홍 기자 승인 2024.12.22 14:52 | 최종 수정 2024.12.22 14:53 의견 0

수수하지만 구수한 농어촌 읽을거리를 탐색해가는 더경남뉴스가 동심 연재로 '다시 읽는 구전동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농어촌이나 산촌이나 '촌'의 공간은 추억을 만드는 보물과 같은 곳입니다.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도 대부분 '촌'에 기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시골의 길섶에서 줍는, 또 하나의 감성 곤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극단 이기심에 찌든 세상에 동심을 불어 넣어보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편집자 주

그 첫 번째로 팥죽과 관련한 구전동화를 선택했습니다. 어제(21일)가 새알심이 든 팥죽을 먹는다는 '동지'였습니다.

새알심이 들어간 '동지팥죽' 이미지. 정창현 기자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의 줄거리>

옛날 외딴 집에 할머니 혼자 팥밭을 일구며 살았어요. 하루는 호랑이가 나타나 할머니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겠어요.

"호랑아, 호랑아, 가을에 팥을 거둬 팥죽이라도 쑤어놓거든 그 때 잡아먹으렴"

할머니는 여름내 바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되어 할머니는 울면서 팥을 잔뜩 거둬들였습니다.

할머니는 흑흑 울면서 팥죽을 한 솥 가득 쑤었어요. 그때 알밤이 데굴데굴 굴러 와 "왜 우시느냐"고 물었어요.

"오늘 밤 호랑이가 잡아먹으러 온단다"

그러자 알밤이 팥죽 한 그릇만 주면 못된 호랑이를 혼내 준다고 했어요.

팥죽을 잘 먹고 난 알밤은 아궁이 속에 쏙 숨었지요.

할머니가 방에서 엉엉 울고 있으니까 자라와 쇠똥, 송곳이 차례로 다가와 팥죽 한 그릇을 주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따끈따끈 팥죽을 내주자 다들 맛있게 먹고 송곳은 부엌문 옆에, 자라는 물 단지 속에, 쇠똥은 그 밑에 숨었습니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계속 꺼이꺼이 우니까 또 절구와 지게, 멍석이 차례로 다가와서 팥죽 한 그릇을 주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뜨끈뜨끈 팥죽을 내주자 다들 맛나게 먹고 멍석은 부엌문 앞에, 절구는 문 뒤에, 지게는 감나무 옆에 싹 숨었어요.

밤이 되자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내려와 툇마루 앞에 앉아 덜덜덜 떨면서 말했어요.

"어이, 추워. 어이, 추워. 왜 이리 추운 게야"

그러자 할머니는 아궁이에 가서 불이나 쬐고서 날 잡아먹으라고 했어요.

호랑이는 냉큼 아궁이 앞에 가서 불을 쬐었지요. 그 때 아궁이에서 알밤이 톡 튀어 나와 호랑이 눈을 세게 때렸습니다.

호랑이는 뜨겁고 아픈 눈을 식히려고 물 단지로 달려가 바가지로 물을 푸는데, 자라가 호랑이 손을 꽉 깨물었고 이어 호랑이는 쇠똥을 밟고 그만 쭉 미끄러져 버렸지요. 호랑이는 하도 놀라 혼비백산 해 부엌문 쪽으로 달아났어요.

그때 부엌문 옆에 있던 뾰족한 송곳이 호랑이 엉덩이를 쿡 찔렀어요. 호랑이는 나 죽는다며 문을 벌컥 열고 나갔어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절구가 호랑이 머리를 퍽 때렸고, 호랑이는 멍석에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지요.

멍석이 제 실력을 발휘합니다. 호랑이를 잽싸게 둘둘 말아버립니다. 그러자 지게가 호랑이를 냅다 들춰 업고 연못으로 달려가서는 호랑이를 물에 던져버립니다.

할머니를 구한 이들은 모두 집으로 와서 다시 팥죽 잔치를 벌였어요. 할머니는 호랑이 걱정 없이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전합니다.

당연히 호랑이는 깊은 연못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지요.

※ 구전동화(口傳童話)는 글이 아닌 입으로 전해지는 어린이 대상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순수함을 내용으로 삼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지속 보폭을 넓히는 '선한 영향력 전파 운동'과 궤를 같이 합니다.

평소엔 하찮게 보이는 미물들이 합심해 순서있게 호랑이를 물리치는 것에서, 죽음을 앞에 둔 할머니가 쑨 팥죽으로 허기를 채운 미물들이 그 고마움에 작은 힘을 합쳐 호랑이를 물리친 것에서, '선함과 약함'이 '악함과 강함'을 이긴다는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 동화입니다.

다소 작위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무언가에 온몸이 씻기는 듯함을 느낍니다. 아이의 마음과 같은 순수함의 힘이겠지요. 그만큼 너와 내가 삶의 켜를 쌓으면서 이기심으로 찌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제 잘난 체 하며 나라를 절단내고 있는 여의도 정치꾼들이 때 묻지 않은 이런 동화를 읽고서 좀 더 순해지길 원합니다. 권모술수에만 능한 금수 같은 정치꾼들이 꼭 읽어야 할 동화입니다.

건강해지려면 아이와 같은 피부를 갖도록 노력하란 말이 있습니다. 아이 얼굴엔 험한 주름 하나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직위가 올라갈수록 동화와 동요를 더 자주 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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