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대구시·중구 공무원 500여 명과 대구경찰청 소속 등 경찰관 1500여 명이 맞서 몸싸움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두 기관의 공권력이 충돌한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퀴어(Queer)는 본래 '이상한', '기이한' 뜻을 가진 단어였지만 성소수자를 지칭합니다.
축제를 둔 이견은 대구시 공무원들은 “무대 등을 설치해 도로를 불법 점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고 대구경찰청은 “적법하게 신고한 집회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며 밀어낸 것이다. 안전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지자체와 경찰이 집회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을 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경찰이 대구시(중구청 포함) 공무원을 밀어내자 현장에서 "경찰이 불법 도로 점거를 방조했다.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발끈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 청장은 “퀴어축제는 적법한 집회여서 (무대 등을 철거하는) '행정 대(代)집행' 요건이 안 된다고 수차례 설명했는데 대화가 안 됐다"고 맞섰고, 이어 "공공 위험성이 급박하지 않은데 대집행을 하면 집회 방해죄가 될 수 있다”고 한발 더 나갔습니다.
두 기관의 마찰은 지난 12일 시작됐습니다.
퀴어축제 주최 측의 집회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대구시에 "집회 장소를 피해 버스 운행을 다른 곳으로 해 달라"고 요청하자 시가 “(퀴어축제가) 버스 노선을 우회할 만큼 공공성 있는 집회라고 보기 어렵다”며 거절했습니다.
퀴어축제 장소는 시내버스와 택시만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전용 지구'여서 버스가 우회하면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일단 이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집회는 일반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 하는 수준에서 치러져야 하는 게 상식이고 불가피한 경우는 가능한 한 줄여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홍 시장과 김 청장의 공방이 사나워졌습니다.
홍 시장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불법 점거를 막겠다고 하니 경찰 간부가 집회 방해죄로 입건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설교하더라”고 썼습니다. 전날(15일) 대구 서구의 공장 화재 현장에서 만난 김 청장이 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김 청장은 한 일간지에 “(홍 시장에게) 관련 법률을 설명했더니 ‘경찰이 그래서 되느냐’고 윽박질렀다. 나이도 많으신 분한테 입건하겠다며 엄포를 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평소 홍 시장의 특유의 돈키호테식 발언일 수 있고, 김 청장의 말마따나 나이가 많으신 분한테 엄포를 놨겠냐고 말한 것과 달리 공권력 무력 충돌까지 가게 한 것은 김 청장의 덕(德)을 말할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번 충돌이 집회 때 '도로 점거'가 허용되는지의 여부가 법에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최근 '선관위 간부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벌어진 감사원과 중앙선관위 간의 감사 수용 여부를 놓고 다툼 것도 이런 경우입니다. 표에 매달린 국회의 탓으로 돌려야 하겠지요.
헌법 21조에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습니다.
이에 근거해 집회는 원칙적으로 신고만 하면 개최할 수 있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 점용 허가'의 경우 집시법에 명시된 규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집회 무대 등을 도로에 설치하려면 ‘도로 점용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지의 규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판결은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의 경우 도로에 무대 등을 설치할 때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도로 점용 허가가 없더라도 집회 시설의 도로 설치를 허용해 왔다고 하네요. 법원과 경찰은 집회 영역을 넓힌 입장을 견지한 것이지요. 이는 누구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또한 서구 사회보다 개인과 작은 조직의 권리가 무시돼 왔다는 것도 고려 대상이 됐을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대구시가 이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홍 시장은 16일에 이어 17일에도 페이스북에 “집회 신고만 하면 도로 점용 허가 없이 도로를 점거하고 통행을 차단해 마음대로 집회를 하는 자유는 우리 법에 없다”며 “집시법에도 신고만 하면 도로 점용을 허가한다는 의제 조항도 없다. 공공 도로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재차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도로법 61조에 있는 '시설 신설을 위해 도로를 점용하려면 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거나 74조의 '도로관리청은 도로 통행과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할 경우 즉시 도로 적치물 등을 제거하거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 즉 행정대집행법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궈어축제나 장애인 축제 등과 같이 이 사회에서 약자들이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동등과 평등이란 점에서 크게 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특정 집회가 혐오감을 주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대다수의 시민에게 불쾌감을 주는 등 적지 않은 이동 방해가 된다면 일종의 '방종'에 가깝다고 봐야하겠지요.
이번 충돌은 헌법과 그 예하 법, 법원의 판례를 들어 양쪽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 시켰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양쪽 다 틀리지는 않습니다. '집시법'과 '도로법'의 충돌인셈이지요.
법 적용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합니다. 국회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지요. 맨날 표를 기반한 '이권'에 함몰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법 개정 작업을 지속해야 이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집회 신고 때 도로나 장소 점용, 동원 장비 등을 적시하도록 법을 속히 고쳐야 이런 볼썽사나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겠지요.
집회의 자유를 막지는 않아야 한다는 대전제는 지켜야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일상이 집회에 예속돼서도 안 되겠지요.
예컨대 오는 7월 1일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의 주 무대가 서울광장 등 한정된 장소라면 허가를 하고 그 주위 대로를 장시간 점유하는 것은 불가로 못을 박는 법 개정이 필요하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홍 시장의 문제 제기는 값진 성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