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건조기를 맞아 큰 산불이 잦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겨울에 이은 봄가뭄으로 대지가 바짝 말라있습니다. 경남에서는 지난 8일 합천에서, 어제(11일)는 하동에서 대형 산불이 났습니다. 하동에선 진주에서 지원 나갔던 산불진화대원이 숨지는 인명 피해도 났습니다.
작년 3월엔 울진·삼척의 엄청난 산불을 경험했지요.
경북과 강원에 걸친 울진·삼척 산불은 무려 발생 10일만(213시간 43분)에 잡혀 방송에서만 듣던 미국의 대형 산불을 연상시켰지요. 198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길게 탄 산불로 기록됐고, 피해영향구역은 무려 2만 923ha였습니다. 주택 등 650곳의 시설이 소실됐습니다. 수백년을 자란 금강송 군락지도 위험하다며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이후 6월 초엔 경남 밀양에서 이에 버금가는 산불이 났습니다. 밀양 산불은 72시간만에 잡혔는데 축구장 1090개(763㏊) 규모가 잿더미가 됐었지요.
화마가 지나간 뒤의 안타까운 수치들입니다.
기자는 오래 전에 산림청을 수년간 담당(출입)한 적이 있습니다.
산림욕장과 자연휴양림 조성 사업을 막 시작할 때입니다
당시 전국의 조림가와 육림가(산에 나무를 가꾸는 임업인)를 찾아다니며 기사를 쓴 기억은 요즘도 가끔 생각납니다. 묵묵히 나무를 가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꽤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파의 돈과 명예에서 동떨어진, 일반인들과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걷는다는 생각이 절로 다가섰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진득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이 자연스레 와닿았지요.
참고로 이 말은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년)가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이보다 150년을 앞서 산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1483~1546년)가 한 것이라고 합니다. 스피노자가 전해지는 격언을 인용한 것이란 말입니다.
특히 식목일을 즈음해서는 해마다 정례 행사로 육림가를 찾아 소개했었습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기사를 신문 1면에 비중 있게 싣던 때입니다. 수십년 전에 동네 주민들이 야산에 올라 나무를 심었던 '사방사업'(조림사업)을 생각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육림가는 '돈 때문에'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나무는 모종을 심어 가꿔서 팔려면 수십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저 나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산에서 간목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면서 나무와 말하며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벌거숭이 산이 지금은 우거져 건강성을 되찾아 맑은 공기는 물론 온갖 생물의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 봄에 잦아진 산불을 보면서 다시금 지난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기자가 산림, 즉 조림과 육림 기사를 쓸 때 정부에서는 큰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그 하나는 산림욕장 조성사업이었습니다. 울창한 삼림에서 산림욕을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마음의 안정을 챙기는 자연건강법의 산실이지요. 나무들이 발산해 몸을 소독해주는 테르펜류(피톤치드)를 듬뿍 쇠고 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풍광이 괜찮은 전국의 산을 골라 산책길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설치합니다.
경기도에 위치한 유명한 국립수목원(옛 광릉수목원)에 있는 산림욕장은 국내에서 처음 개장(1989년 7월 9일)한 시설입니다. 산림 면적은 2200만㎡, 임목 축적은 ha당 158㎥로 대단합니다.
산림욕장을 조성할 당시엔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많았습니다. 당시엔 여가문화가 일천할 때여서 산림욕장 이용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많이 이용해 달라는 기사를 수 없이 쏟아냈었지요.
삼림욕장에 이어 자연휴양림 조성사업도 대대적으로 했습니다.
자연휴양림은 산림욕은 물론 하이킹, 캠프, 레저, 숙박 등 자연에서의 관광이나 숙박을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조성한 종합시설입니다.
일반인들은 대별이 쉽지 않지만 산림욕장은 산의 나무 등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게, 자연휴양림은 편의시설을 좀 더 갖추어 며칠을 쉬어갈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맞을 듯합니다.
요즘은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라는 기관이 생겨 통합관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당시 이들 시설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지 않아 기자가 '이용 민원'을 넣으면 바로 해주었습니다. 워낙 놀리고 있는 시설이 많아 기자가 이용해보고 '감탄의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차원도 있었겠지요.
요즘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SNS 홍보원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제품 사용 후기를 써주는 틀로 보면 되겠습니다. 요즘은 각 지자체에서 '한 달 살아보기 사업'도 많습니다. 숙박비와 여행비를 지원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산림욕장과 자연휴양림은 어떻습니까? 인기가 하늘을 찌르듯 대단합니다.
이용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온라인 추첨을 한다지요. 전혀 민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합니다.
산림욕장과 자연휴양림 기사를 쓰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당시 산림청 실무자로 알던 분이 지금은 산림청의 수장이 됐으니 세월도 꽤 흘렀습니다.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자연휴양림을 생각하면, 암에 걸려 경기도 유명 휴양림의 관리소장으로 있던 지인이 떠오릅니다. 산림청 직원으로 오래 근무했던 그는 암 수술을 하고서 자연휴양림 근무를 자청했다고 하더군요. 전화 통화를 했을 땐 암 수술 후 몇 년이 됐다면서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했습니다.
직장 생활 속의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삼림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 때문이었겠습니다. 기자 지인의 경우처럼 앓아보면 숲과 나무가 우거진 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듯이 산과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이만한 우군이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흔해서인가요? 우리는 산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불은 주의만 하면 거의 예방이 됩니다.
기자는 당시 산림청을 출입할 때 받은 산림보호요원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건데 수첩에 항시 끼어져 있습니다. 한번씩 보면 이 증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음, 내가 산림 기사는 많이 썼지" 이러면서 말입니다. 산에서 맑은 공기에 스트레스를 풀면서 건강을 지켜가는, 어찌보면 '측은해 보이는' 현대인들에게 나름 일조를 했다는 자존감이겠지요.
산불이 잦은 지금, 한 말씀 올립니다. "산 쫌 아끼고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