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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는 세상] "마주막(지막) 인생 조훈(좋은) 일 한번"…빈 병 줍던 80대 할머니 동사무소 들른 사연

빈 병 팔고 용돈 모아 30만 원 마련해 성금 기탁
복지센터 직원들이 짠해진 건 '맞춤법 틀린 손글씨'

천진영 기자 승인 2023.12.12 16:45 | 최종 수정 2023.12.12 16:50 의견 0

“내 나이 팔십 다섰(다섯) 마주막(마지막) 인생을 살면서 조훈(좋은)일 한버(한번)도 못 해보고···에 첨이고(첨이고) 불으한(불우한) 어리니한태(어린이한테) 써보고 싶습니다”

80대 어르신이 1년 동안 빈 병을 팔아 모은 돈을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며 기부한 애뜻한 사연이 알려졌다.

경북 안동시에 따르면 안동시 옥동에 거주하는 이필희(85) 할머니는 지난 5일 옥동행정복지센터에 들러 1년간 빈 병을 팔아 모은 돈과 생활비를 조금씩 아껴 만든 30만 원을 손편지와 함께 건넸다.

하루 하루 모아온, 할머니에겐 큰 돈인 30만 원과 함께 할머니가 눌러쓴 삐뚤빼뚤한 손글씨 편지를 읽어가던 복지센터 직원들은 코끝이 찡하다 못해 울컥해졌다.

이필희 할머니(85)가 직접 쓴 손편지. 안동시 제공

할머니는 어린이용 일기장 한 장에 “저도 남의 옷을 만날 얻어 입고 살아왔는데 내 자식 오남매 키우고 가르치며 사느라고 없는(가난한) 사람 밥도 한술 못 줘보고 입던 옷 하나 못 줘봤다”며 “이제는 내 아이들이 부자는 아니라도 배 안 고프게 밥 먹고 따뜻한 방에 잠 잘 수 있으니, 나도 이제 인생길 마지막에 좋은 일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라고 적혀있었다.

할머니는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올해 1월부터 빈 병을 모으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7일까지 빈 병을 모아왔다고 했다.

편지에는 “십원도 안 쓰고 12월까지 모은 게 15만 원,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아껴 쓰고 남은 15만 원을 더해 30만 원”이라며 “적은 돈이지만 불우한 어린이에게 써보고 싶습니다”라고 남겼다.

이 할머니는 “어디에 보내면 되는지 몰라서 동장님을 찾았다. 동장님이 알아서 잘 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어릴 때 공부도 못해 근로자복지관에서 한글 공부로 배운 글이라 말이 안 되는 게 있어도 동장님이 잘 이해해서 읽어봐 달라”고 글을 맺었다.

옥동행정복지센터는 할머니가 기탁한 성금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해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에게 지원된다.

안동시 관계자는 “힘들게 마련해주신 어르신의 마음이 어떠한 나눔보다 크고 소중하다”며 “기부해주신 성금은 어려운 아동을 비롯해 힘든 이웃에게 소중히 전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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