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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宰相)이 특별한 찾은 결혼식장'···한덕수 국무총리, 마산 내려와 '26년만의 결혼식' 깜짝 주례 섰다

지난 24일 소문 내지않고 마산 방문
무료결혼식 베푼 고 백낙삼 씨 뜻 기려

정창현 기자 승인 2023.12.25 03:07 | 최종 수정 2023.12.25 22:36 의견 0

“김치, 참치, 꽁치!”

성탄절 전날인 2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조용히 마산을 찾아 결혼 26년 만에 식을 올리는 부부의 주례를 섰다.

한 총리가 주례를 선 곳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으로 사진사였던 고(故) 백낙삼 대표가 50여년 간 형편이 어려운 부부 1만 4000여 쌍의 결혼식을 치러준 예식장이다. 백 대표는 지난 4월 93세로 별세했고, 지금은 아들 남문 씨가 유지를 잇고 어머니가 뒤를 돌보고 있다. 다만 꾸려가는 경영 여건은 그리 녹록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백 대표는 3층짜리 건물을 예식장으로 무료 제공하고 사진 촬영에 드는 실비 외엔 돈도 받지 않았다. 평생 무료 결혼식을 지속하기 위해 백 대표와 아내 최필순 씨가 건물 관리와 식장 청소, 주차까지 직접 챙겼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성탄절 전날인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의 주례를 서고 있다. 국무총리실

한 총리가 이날 낮 12시 30분 예식장에 깜짝 등장하자 하객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부담스러워할까 봐 한 총리의 주례 사실을 신랑 신부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부는 지난 1997년 결혼해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고 살았으나 그동안 형편이 좋지 않아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었다.

한 총리는 주례사를 통해 “모든 사랑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품위가 있다. 그렇지만 제게는, 열심히 일하면서 온갖 풍파를 함께 견딘 뒤 서리 내린 머리로 혼인 예식을 올리는 신신예식장의 부부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사랑 중에 가장 애틋한 사랑은 오래된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흔히 주례사를 할 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두 분은 이미 즐거운 순간과 괴로운 순간을 수없이 넘기며 26년을 해로해온 분들”이라고 축복했다.

이어 “두 분이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따님은 병마를 이기고 대학에 입학해 바리스타의 꿈을 향해 걷고 있고, 두 분의 멋진 점만 쏙 빼닮은 아드님은 장차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며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이렇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셨으니, 두 분은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하시다”고 격려했다.

이날 신랑신부가 된 이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을 때 쑥스러워하자 한 총리는 “김치! 참치! 꽁치!”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환하게 돋웠다.

한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백 대표가 떠나신 뒤 부인과 아드님이 고인의 유지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나면 작은 힘이라도 꼭 보태고 싶다고 항시 생각했다"며 "성탄절 이브인 오늘 인연이 닿았다"는 글을 올렸다.

한 총리는 "신신예식장은 고단하게 사느라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 한 장 없이 반백이 되신 분들이 애틋한 꿈을 이루는 곳으로, 돌아가신 백 대표님께서는 그 꿈을 이뤄주는 데 평생을 바쳤다"며 "예식장 벽면에 빼곡하게 붙은 신랑 신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고 했다.

이어 "사랑 중에 제일 애틋한 사랑은 오래된 사랑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일하며 온갖 풍파를 함께 견딘 분들이 서리 내린 머리로 식을 올리는 모습이 찡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신신예식장에선 4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한 총리는 축의금 대신 이들 부부의 결혼식 사진 촬영비를 지원했다. 백 전 대표의 부인 최 여사와 아들인 남문 대표에게는 "부친의 뜻을 이어줘 고맙다"고 격려하고 예식장을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을 찾아 고(故) 백낙삼 대표 관련 기념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국무총리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에 구비된 갖가지 웨딩드레스들. 한덕수 총리 페이스북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24일 창원시 마산 신신예식장에서 깜짝 주례를 마친 뒤 고 백낙삼 대표(93세 별세)의 부인 최필순 여사와 아들인 백남문 대표 등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은 아들 남문 씨가 유지를 잇고 어머니가 뒤를 돌보고 있다. 한 총리 페이스북

■다음은 한 총리의 주례사 전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뭐든 새로운 것이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인생에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정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신신예식장도 그렇습니다.

오늘 멀리 마산까지 내려오면서 신신예식장 창업주이신 고(故) 백낙삼 대표님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고인은 지난 4월 향년 91세(호적나이)로 별세하시기 전까지 전국에서 찾아오는 연인들에게 매번 사진도 찍어주고 예복과 장소도 제공하며 결혼식의 꿈을 이뤄주셨습니다.

생전에 “100세까지 무료 예식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셨고 부인과 아드님이 유지를 이어가기로 하셨다는 부고 기사를 읽고, 시간이 나는대로 꼭 유족을 찾아뵙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드리고 싶었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고인이 평생을 보낸 신신예식장에서 신랑 ○○○님과 신부 ○○○님의 혼인 예식 주례를 보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두 분께 무슨 말씀을 드리면 좋을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옛날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보다 오늘 이 주례사가 더 어려운 것도 같습니다.

흔히 주례사를 할 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두 분은 이미 즐거운 순간과 괴로운 순간을 수없이 넘기며 26년을 해로해온 분들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니까 참으라’는 말씀도 많이 하시는데, 이 말씀도 두 분께 드리기는 새삼스러울 것 같습니다.

아들 딸 낳고 26년 살아오시는 동안 두 분도 여느 부부들처럼 열심히 물 베기를 해오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리 생채기를 냈어도 상처가 덧나게 내버려두지 않고 늦기 전에 화해하고 서로를 다독이셨기에 오늘 이 자리에 나란히 서 계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모든 사랑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품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열심히 일하면서 온갖 풍파를 함께 견딘 뒤 서리 내린 머리로 혼인 예식을 올리는 신신예식장의 부부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애틋한 사랑은 오래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분께, 지금까지 서로 사랑한 것처럼 앞으로도 서로를 쭉 사랑하시라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신랑 ○○○님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해오셨습니다.

신부 ○○○님은 시부모님과 친정 식구들을 살뜰히 챙기면서 1남 1녀를 반듯하게 키워오셨습니다.

두 분이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따님이 병마를 이기고 대학에 입학해 바리스타의 꿈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두 분의 멋진 점만 쏙 빼닮은 아드님은 장차 배우가 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분에게 감동을 주는 큰 배우가 되길 기원합니다.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이렇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셨으니, 두 분은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하십니다.

모두가 두 분이 헌신하고 노력하신 결과입니다.

아내에게 웨딩드레스 못 입혀 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는 신랑님, 내 생애 면사포를 쓸 일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는 신부님, 두 분 다 오늘 참 멋지고 아름다우십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마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지금껏 걸어오신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서로 손을 꼭 잡고 해로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모든 일이 다 내 맘같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소중한 예식을 통해 가족의 정이 깊어지길 바랍니다.

따님과 아드님이 긴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 어려운 순간이 닥쳤을 때, 오늘을 떠올리며 잘 헤쳐나갈 힘을 얻으신다면 더 바랄 일이 없겠습니다.

돌아가신 신신예식장 백낙삼 대표님도 같은 마음으로 한평생 1만 4000쌍의 예식을 올려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님과 온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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