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연극 무대를 누벼온 원로배우 오현경 씨가 8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1일 유족에 따르면 오현경 씨는 지난해 8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경기 김포의 요양병원에서 6개월을 투병해오다 이날 오전 숨을 거뒀다.
1954년 서울고 2학년 때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연극반을 만들었고, 3학년 때인 1955년 전국고교연극경연대회에 유치진 시인의 작품 ‘사육신’으로 출전해 남자연기상을 수상해 연기 재능을 인정받았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때 연세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약했고, 1학년 때 응원단장을 맡을 정도로 무대 자질은 남달랐다.
졸업 후에는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며 '봄날', '휘가로의 결혼', '맹진사댁 경사', ‘동천홍’, ‘허생전’, ‘3월의 눈’등에 출연하며 관객들을 만났다.
1970년대 그가 출연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허생전’은 표를 사려는 줄이 명동성당까지 이어지고,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극장 유리창을 깨고 뛰어들어갈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3월의 눈’은 국립극단 연극으로, 그가 아내를 떠나보내고 반년여 만에 시작한 연기다.
고인은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1960년대 TV 드라마 시대를 열었다. 특히 드라마 ‘손자병법’(1987~1993년)에서 이장수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TV손자병법’에서 늘 부장 진급에 실패하는 만년 과장 이장수 역을 맡아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맛깔나게 그려냈다.
그는 식도암(1994년), 위암(2007년)을 앓으며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일화로 식도암 수술을 앞두고 쓰러졌을 땐 전기충격기 응급치료를 받은 뒤 깨어났다.
이어 2008년 연극 무대로 복귀해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TV 출연으로 인기를 구가하며 당시 돈으로 집 두 채에 해당하는 광고 제안을 받았지만 ‘예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상업 광고를 찍느냐’며 거절했다.
고인은 연극계에서 발성과 화술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2001년 사재로 배우 재교육 연구소인 ‘송백당’을 세워 배우들에게 우리말 모음의 장·단음 구별법과 억양을 가르쳤다. 그는 “연극배우는 청중이 300명이든 500명이든 똑같이 들리도록 발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6년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 1985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1992년 KBS 대상을 받았다.
이어 2008년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주인공’에서 주역 최팔영 역할로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봄날’에서 아버지 역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출됐고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고인은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연극 무대에 애정을 쏟았다.
연기 말년에도 ‘햄릿’, ‘레미제라블’ 등의 작품에서 주·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서며 후배 배우들의 모범이 됐다.
지난해 5월에는 연세극예술연구회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함께 올린 합동 공연 ‘한 여름밤의 꿈’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고인의 유작이 됐다.
그는 배우 윤소정 씨와 1964년 만나 결혼했다. 2017년 아내를 패혈증으로 먼저 보냈다.
유족으로는 배우인 딸 지혜, 아들 세호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5일 오전 5시 20분,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02)2227-7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