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곡우(穀雨) 절기(올해는 19일)에 농업과 어업 속담이 적지 않습니다.
곡우 절기는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때여서 농사일과 바닷일이 시작됨을 뜻합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로, 양기가 더해져 농·어업인들의 발길이 슬슬 바빠지지요.
곡우(穀雨)는 '곡식 곡(穀)', '비 우(雨)'로, 한자 풀이처럼 이 시기에는 비가 자주 내립니다. '백곡'(百穀·여러 곡식)이 싹을 틔우고 자라기에 비가 자주 내려줘야 합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는 곡우 절기에 봄가뭄이 들면 농사에 치명적이라는 뜻입니다. 갖가지 생물이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기 위해선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석 자에서의 '자'가 애매합니다. 현행 도량형(度量衡·길이·부피·무게 등을 재는 방법)에서 '자'는 넓이가 아닌 길이를 뜻합니다.
'자'는 '척(尺)'과 같은 뜻으로, 한 자는 한국의 전통적 길이의 단위로는 30.3cm입니다. 석 자는 91cm 정도로 1m가 채 안 됩니다.
따라서 지금의 도량형 기준으로 따지면 이 속담은 틀렸습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에서 '자'를 '㎡'으로 환산해 적시해야 맞겠지요. 지난 2001년 7월부터 넓이의 단위 평은 ㎡로 바뀌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헷갈리지만, 조선시대 등 예전엔 '자'를 넓이의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한 줌의 흙'이란 문구에서처럼 '줌'도 넓이의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옛날엔 근현대식 계량형 수치를 정확히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에서의 '자'는 지름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속담과 뜻이 비슷한 속담 몇 개를 소개하며 대별해 보겠습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 든다'는 속담은 곡우 무렵에 비가 오면 물이 풍족해 못자리에 물대기가 좋고, 풍년 농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곡우에는 못자리를 해야 한다'는 속담도 비슷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곡우에 맞춰 못자리를 만들어야 벼가 시절에 맞춰 자라고 추수할 때 보다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도 의미가 달라보이지만 풀이하면 위의 속담들과 비슷합니다. 곡우 절기는 봄에 뿌리고 심은 곡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시기로, 이를 잠에서 깬다로 표현했습니다. '생장을 한다'는 뜻을 '잠을 깬다'로 원용한 것이지요.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는, 위의 속담들과 반대의 속담도 있습니다.
곡우 무렵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데 왜 이런 속담이 나왔을까요?
곡우에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농작물들이 썩거나 병이 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속담은 인천 옹진군에서 통용되는데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들어 샘(우물)의 구멍이 막혀 되레 가뭄이 든다고 해석합니다.
어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는 속담은 조기는 산란할 때 소리를 내 운다고 합니다. 산란 직전의 곡우 시기의 조기는 살이 연하고 맛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흑산도 가까운 바다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들이 곡우 때면 온난한 수온을 타고 북쪽인 충청도 격렬비열도 근해로 올라오는데 이때 잡는 조기를 '곡우살이'라 합니다. '곡우살이'는 성어가 아니어서 연하고도 맛이 있어 어업인들은 조기잡이에 나섭니다.
조기가 많이 잡히던 옛날엔 봄 곡우 무렵에 바다 위 어시장인 '파시(波市)'가 생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