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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속담 순례] '매화꽃 적게 피면 보리농사 망친다'(28)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3.02 15:19 | 최종 수정 2024.03.04 10:07 의견 0

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매화가 봉오리를 맺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철입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 중 매화, 산수유가 그 중 빨리 봄이 옴을 알리는 꽃이지요. 달리 눈 속을 뚫고 나오는 인동초나 늦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봄을 알리는 상징이라기 보다 겨울 추위를 이기고 피는 꽃으로 봅니다.

속담 '매화꽃 적게 피면 보리농사 망친다'는 매화꽃이 적게 피면 생육에 영향을 주는 날씨 등 좋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맘 때의 날씨가 겨울을 이겨내고 재발육을 해야 하는 보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이 속담은 보리농사를 많이 짓던 경남 지역에서 통용됐습니다.

지난 1일 진주시 진성면 야산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맺힌 봉오리와 꽃 모습. 정창현 기자

보리는 늦가을에 심고 싹이 적당히 자란 상태에서 겨울을 납니다. 따라서 혹한의 겨울엔 보리밭에 서릿발이 생기고 일부 뿌리가 노출돼 언 뒤 말라죽습니다. 살아 있는 뿌리가 봄을 맞아 재발육을 하지요.

이때 뿌리가 동해를 입지 않도록 밟아주는 작업도 하지만, 수분 공급도 잘 돼야 생육 여건이 좋아집니다.

이름 봄, 가장 먼저 대지의 양기를 받아 봉오리를 맺는데 매화가 꽃을 적게 피운다는 것은 분명 늦추위나 가뭄 등 날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요즘이야 어딜 가나 관수 시설이 잘 돼 있어 수분 공급엔 큰 문제가 없지만 어디 예전엔 그랬겠습니까?

결론적으로 기상 여건이 좋지 않으면 보리의 '유효분얼(有效分蘗)'과 '유수형성(幼穗形成)'에 지장을 줘 보리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유효분얼(有效分蘗)이란 '알곡이나 열매를 착생하는 분얼'을 말합니다. 있을 유(有), 본받을 효(效), 나눌 분(分), 서자 얼(櫱)입니다. 여기에서의 분얼의 뜻은 '식물의 땅 속에 있는 마디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유수형성(幼穗形成)은 '영양생장을 마친 후 생식생장으로 바뀌면서 어린 이삭을 만드는 과정, 즉 이삭이 분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즘은 보리를 많이 심지 않아 '매화꽃 적게 피면 보리농사 망친다'는 속담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속담이 주는 의미가 보리만이 아닌 모든 작물에 적용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실제 지금 현장에서 겪고 있습니다.

농업인들은 최근 잦아지는 이상기후가 각종 작물의 생육에 영향을 많이 줘 농삿일을 하는데 종잡을 수 없다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예컨대 수확과 출하 시기를 맞춰야 하는 시설채소와 시설화훼는 봄햇살이 좋은 이맘 때 따스한 햇빛을 많이 쬐어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비가 잦습니다. 여름 장마철에 내리는 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호박, 고추 등 시설채소가 햇빛은 고사하고 곰팡이 번식 등 습해를 받고 자람이 제대로 안 되고 수정도 덜 돼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화훼 시설농가에서도 비슷한 여건에 꽃 생산량이 크게 줄고 출하 시기도 늦어져 졸업과 입학, 결혼 성수기 타격이 크답니다.

거꾸로 비가 자주 내리면서 땅에 수분이 많아져 물 빠짐이 좋은 야산 과수원의 유실수나무엔 오히려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겨울을 난 보리의 생육에도 좋습니다.

이제 막 피고 있는 매화나무에 봉오리와 꽃이 많아 보입니다. 물론 지난해와 같이 꽃샘추위로 동해와 냉해를 입지 않아야 수정이 잘 되고 잘 자라겠지요.

지난 1일 진주시 진성면 야산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맺힌 봉오리와 꽃 모습. 정창현 기자

'매화꽃 적게 피면 보리농사 망친다'는 속담이 올해는 봄비가 자주 와 거꾸로 '매화꽃이 많이 피면 보리농사 풍년된다'로 바꿔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습해와 동해를 받지 않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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