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요즘은 입춘(立春) 절기입니다. 한자 세울 입(立), 봄 춘(春)을 그대로 해석하면 '봄을 세운다', 즉 '봄이 옴을 알린다'는 뜻입니다.
올해는 입춘 절기가 매우 온화합니다. 하늘에서 쬐는 햇살도 봄이 옴을 알리듯 따사롭습니다. 양지 바른 곳엔 겨우내 언 땅이 녹아 질펀한 곳도 있고, 봄나물이 순을 돋우고 있습니다. 다만 한 두 번의 꽃샘추위는 예상할 수 있겠지요.
'입춘에 보리 뿌리 3개면 풍년 든다'는 충남과 경북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속담입니다. 봄이 오는 입춘에 모진 겨울추위를 이기고 뿌리가 많이 살아나 있다는 의미이지요.
겨울 월동기간에 토입(土入·보리 포기 사이에 흙을 뿌려 넣는 일)과 답압(踏壓·겨울동안 들뜬 겉흙을 눌러 주고 뿌리가 잘 내리도록 보리싹 그루터기를 밟는 일)으로 관리해 뿌리가 살게 해 주면 해빙기 이후 뿌리가 다시 내려 정상적으로 큰다는 뜻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쓰던 말인 답압이란 겨울 동안 물빠짐이 잘 안 되면 서릿발(땅속 물이 얼어 기둥모양으로 솟아오른 것)이 생기는데 둘뜬 겉흙을 밟아주는 작업이지요. 언 땅이 녹으면서 흙이 솟아 뿌리가 얼거나 말라죽습니다.
뿌리의 동해는 겨울에 땅이 얼면서 부풀어 오를 때 많아집니다. 부푼 틈으로 찬가운 기운과 물이 들어가 뿌리를 얼게 할 수 있습니다. 뿌리를 밟아 꼭꼭 눌러주면 동해 방지는 물론 양분과 수분 흡수도 좋아져 왕성하게 자라게 됩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덜 추운 남부 지역은 겨우내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자주 해 서릿발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땅이 녹아 새로운 생육이 시작되는 2월 상·중순, 입춘 전후에 답압기를 이용해 눌러주고 물빠짐 골을 잘 정비해주어야 합니다.
보리밟기의 효과는 동해 방지만 하지 않습니다. 과잉 생육을 억제하고 분얼(分蘖·땅속에 있는 마디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을 왕성하게 합니다. 왕성한 분얼은 많은 이삭 수를 확보해 수확을 더 많이 할 수 있지요.
동해 피해가 발생한 곳을 밟아주면 뿌리 발달이 좋아져 자랄 때 쓰러짐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수확량이 3~4% 는다고 합니다.
'입춘에 보리 뿌리 3개면 풍년 든다'는 속담과 비슷한 속담으론 '입동(立冬)에 보리 뿌리가 3개 이상 나면 풍작이 든다'(대구 지역)가 있습니다. 이 속담은 추위가 닥치는 입동 전에 뿌리가 많이 나 있어야 튼실해 동해를 덜 받고 겨울을 잘 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보리 뿌리를 흙에 잘 붙도록 눌러줘 뿌리가 깊게 뻗어 입과 줄기로 양분도 잘 전달되고, 이에 따라 줄기와 잎의 즙액 농도가 올라가 추운 겨울을 잘 견디게 됩니다.
절기상으로 입동은 겨울 전이고,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로 그 사이에 추운 겨울이란 틈이 있지만, 두 속담은 보리가 잘 자라도록 밟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리는 입동 전에 묻어줘라'는 속담도 앞의 두 속담과 해석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이 속담은 입동은 양력 11월 초순에 드는데 이때부터 추위가 시작돼 입동 후에 보리를 파종하면 추위로 발아와 생육이 부진해 냉해를 받기 쉽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적기에 보리 파종을 하면 월동 전에 5~6장의 잎이 자라나 월동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11~12월 파종 후 1~2번, 다음 해 경립기(뿌리와 초엽 사이 줄기, 어린 이삭이 든 줄기가 2cm에 이른 시기)까지 2번 정도를 밟아주면 좋다고 합니다. 건조하거나 추위가 심한 해는 횟수를 늘려야 합니다.
특히 땅이 꽁꽁 어는 지역은 얼기 전에 꼭 한번은 보리밟기를 해야 소출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첨언하면 앞의 속담들에서 1950~70년대 초 없는 집안의 연례 행사였던 '보릿고개 넘기기'의 곤궁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야 보리가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지만, 당시엔 한 끼를 때우는데 없어선 안 되는 귀한 곡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