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대 총선(4월 10일)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 띄운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이 아직도 여의도 정가에서 불씨를 붙여가고 있다. 크지도 않지만 작지도 않아 국민의 눈높이에선 어중간한 이슈 거리로 보이는데 정가에선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코로나19 발생 후 선거 때마다 끄집어내 이번에도 민주당의 총선용이겠거니, 저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민주당이 저렇게 사생결단으로 관철시키겠단다. 오는 30일 22대 국회가 개원되면 첫 안건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청와대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여의도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
민주당의 저 배포가 당의 '총선 1호 법안'이어서 그런가? 거대 의석을 가진 무소불위(無所不爲·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에도 없음) 때문인가? 둘 다 영향을 준 것으로 봐야 겠다.
때마침 지원금과 관련한 여론 조사들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머리 싸맨 수싸움은 제쳐놓고, 돈을 받는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
다음은 최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에 관해 물어본 여론조사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 업체가 지난 4월 29~31일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물었더니 '찬성 46%, 반대 48%'로 나왔다. 의견이 팽팽하다. 그런데 월급을 쪼개 살림을 하는 주부들은 찬성 41%, 반대 50%로 의외로 차가 컸다.
2인 가족은 50만 원, 부모와 함께 사는 4인 가족이면 100만 원을 받아 짭짤한데 왜 주부들의 반대가 전체 반대보다 7%포인트나 더 높을까? 대형마트 세일하는 날만 기다리며 채소·과일 매대에 서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진 뒤 장바구니에 담는 주부들이 왜 이런 답을 했을까? 25만 원은 이렇듯 주부에겐 요긴한 돈이다.
주부들의 이 같은 결론을 낸 건 받는 25만 원보다 이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더 많이 대가를 치를 것이란 것을 대차대조라도 했다는 말인가?
여론 조사 내용을 좀더 꼼꼼히 살펴본다.
먼저 정치 성향별로 봤다.
자신이 보수(우파)라고 한 응답자의 70%가 반대했고 진보(좌파)라고 한 63%는 찬성했다. 짐작했던 이념적 극과 극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연령대의 여론을 분석해보니 흥미롭다.
18~29세는 46%대 42%로 지원금 지급 반대가 조금 더 많았다. 30대에서는 반대가 훨씬 더 많았다. 반대 59%, 찬성 36%로 무려 23%포인트 차다.
반면 40대에서는 반대 38%, 찬성 56%%였고 50대에선 반대 40%대, 찬성 57%였다. 40~50대에선 찬성, 즉 달라는 답변이 훨씬 많다.
60대는 반대 52%, 찬성 45%였고 70대 이상은 57% 반대에 36%가 찬성이었다. 60대에선 반대가 많을 줄 짐작했는데 예상만큼 반대가 많지 않았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기자 개인의 분석임을 밝힌다.
먼저 민생지원금이 더 요긴한 세대를 추려보았다.
직장을 갖기 전인 10대, 직장 초년생인 20대, 퇴직한 60대 이상이다. 이들에겐 25만 원이 가뭄에 단비와 같다고 보았지만, 안 줘도 된다는 반대가 많았다.
반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40대와 50대는 상대적으로 월급을 두둑히 받아 25만 원에 큰 관심이 없을 것으로 보았지만 그 반대였다.
상식적인 예상과 달라 기자는 적이 혼돈스러워졌다.
40대와 50대에서 25만 원 지급을 찬성한 이유를 '좌우 이념'과 연결시켜 보았다. 좌우 이념적 성향이 정치권에서 내놓은 '민생지원금 논쟁'에 찬반의 선을 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통상 한국 사회의 이념적 성향을 40~50대는 진보좌파적, 60대 이상은 보수우파적으로 본다. 젊은 세대만 놓고 보면 30대 이하는 정치적 이념에 덜 물들었고, 40~50대는 정치적 이념에 상대적으로 물들어 있다고 한다.
반면 60대 이상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던 시절 근검절약이 몸에 배 나라살림 걱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실제 60대 이상은 은퇴를 한 경우가 많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지만 25만 원을 거절하는 이가 많았다. 다만 60대가 통상 짐작한 것보단 반대가 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70대보다 아직 소비력이 더 있어 돈이 필요해서인가 싶다.
이른바 MZ세대인 30대는 실용적인 면도 꼽을 수 있다. 왜 내가 낸 세금을 불특정 다수에게 나눠주냐는 불만을 조사에서 반영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모든 틀에서 분석하니 수긍이 가능한 찬반 비율이 들어왔다.
어떤 세대에선 정치이념적으로, 어떤 세대엔 생계 도움적으로, 어떤 세대에선 실용적으로 답변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득보다 이념에 함몰된 답변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이는 크진 않지만 25만 원이 꼭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에서 '필요없다'가 더 많이 나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내수경기가 얼어붙었을 때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지급한 '재난지원금'을 수차례 경험했다.
어려울 때 요긴하게 쓴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 풀린 돈에서 곧바로 소비로 이어진 건 30%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민주당의 이 대표가 주장하는 돈이 풀리면 어려운 민생경제가 돌 것이라는 주장과 배치된다.
위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25만 원이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것이란 시각을 갖는 것 같다. 25만 원을 덥썩 받았다간 부지불식간에 30만 원, 50만 원을 호주머니에서 내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손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의미다.
우리는 요즘 살인적인 음식 가격과 생필품 가격이 된 게 시중에 풀린 돈 때문이란 걸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무렵인 2022년 인플레율은 5.1%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몇 번 손에 줘어준 지원금이 반가웠지만 이어 돈이 많이 풀리면서 고물가, 고금리로 이어져 주부에겐 채소 값으로, 은행 빛을 낸 서민들에겐 고이자 공격이 됐다는 분석이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이로 인한 물가는 이제 점심 한끼 마음 편하게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원금의 몇 배가 부메랑으로 돼 돌아온 것이다.
아침에 사과 4개, 저녁에 3개로 꼬셨다는 고사성어 '조삼모사'가 맞아떨어진다. 금사과가 된 지금 사람이 먹을 것도 적어졌지만···.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눈 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니 시무룩해지고,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언급하니 좋아했다는 고사다.
민주당 이 대표는 600조 원이 넘는 1년 국가예산에서 고작 13조 원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적자재정이 지속되고 있고, 물가는 천정을 뚫을 정도로 많이 오른 지금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주요 국가들도 코로나19로 푼 돈을 거둬들이는데 혈안이 돼 있다.
대다수 국가에서도 코로나 시기에 푼 돈으로 국민들이 고물가에 고통을 받으면서 국가 수장들의 지지율은 형편없이 땅을 헤맨다. 서올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바이든 현 민주당 정부는 공화당의 트럼프를 이기려고 코로나19가 끝나자 마자 물가 잡기 고삐를 바짝 죄왔다. 대선 승패의 최고 변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는 한번 수렁에 빠지면 정상화에 많은 기간이 걸린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들어 정권 잡은 지 2년인데 아직도 전 정권 타령이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래 걸린다. 하물며 가정에서도 빚을 많이 지고나면 식구들이 벌어 갚아도 수 년이 걸린다.
요즘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 탓이 크다.
예를 들어 검증 안 된 소득주도성장이나 대폭 올린 기본소득으로 직원 임금이 올라 자영업자를 어렵게 하고,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고금리가 정착되며 빌린 이자 갚기에 허덕인다.
음식값 인상도 식자재 값(이상 기온과 러-우크 및 중동전쟁) 폭등 영향도 크지만 음식점 임대료 인상에 기인한다. 임대료 인상은 왜 발생하나? 돈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은행에서 빚을 내 건물을 소유 중인 건물주로선 이자가 비싸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자를 깎아주면 되지 않냐고 주장하지만 정책 당국으로선 시중에 깔린 돈을 금융권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저금리 정책을 쓰기 어렵다. 이자가 비싸야 시장에 풀린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자를 내리지 않고 대신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또한 개인들은 물가가 오르니 지갑을 닫는다.
지금은 한 푼이 아쉬웠던 코로나 시기도 아니고 고물가나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다.
여기에서 돈을 더 푼다는 것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껌값 13조 원은 더 큰 악재를 쌓을 우려가 크다.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갈 때야 크지 않은 액수이지만 지금은 경제가 매우 취약해 이 돈이 악재가 될 소지도 적지 않다.
경제계에선 13조 원이 시장에 풀리면 물가가 최소 1%는 오른다는 주장도 있다.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으로 월급 생활자의 실질소득이 깎이지만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해 부자들만 웃는다고 한다.
돈을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이는 인간의 기본 심리다. 하지만 선동도 이러한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나아가 국가가 잘 못 쓰는 '눈먼 돈'이 한 두 푼이냐, 사기꾼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13조 원의 몇 배는 될 것 등 정부 정책 실패를 드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 이 대표가 지속 25만 원 지급 주장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이로 정치적인 기반을 다지겠다는 포석이고 술수로 보인다. 전 국민에게 25만 원을 다 주는 '보편 복지'가 좌파의 집권을 쉽게 해준다는 얘기다.
이 대표의 이러한 행태에 '꽃놀이패', '악마의 재능'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간에는 이 대표의 민주당이 어떻게 하면 25만 원으로 물가를 부추겨서 윤석열 정부의 무능함을 각인시키고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잡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만큼 25만 원 지급 명분이 약하다는 의미다.
이 말고도 그가 경기지사 때부터 선거철이면 꺼낸 '기본소득'을 지속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도 뭍어난다. 기본소득 개념은 재산과 소득이 얼마이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이 지사는 경기도 기본소득을 시작으로 2022년 대선에서도 전국민 연단위 기본소득을 공약했고, 지난 총선에서 1회성 기본소득인 25만 원 민생지원금을 공약했다. 자신의 기본소득 주장에 국민이 익숙해지도록 만들려는 것이란 정치적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의 퍼주기 전략은 때 되면 돈만 뿌리는 무책임한 지도자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자꾸 구태정치의 단골 사례인 '고무신 선거'가 오버랩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대표는 정치적인 계산을 따진 대국민 현혹을 거두기를 바란다. 지금은 극한 비상 시국은 아니다. 실제 지원금을 두고 저잣거리에서 이를 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심도가 덜하단 뜻이다. 한 개인의 정치 명분보다 서민경제 명분이 더 크게 보이는 지금이다. 무엇보다 25만 원 지원금이 한국 사회에 드리운 '이념적 망조(亡兆·망할 징조)'의 연장선에 있다면 더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