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축협 전부 적폐 소굴이다"→"말해 뭐해", "농협 하나로마트 계통 수수료 전면폐지하고 농협물류 유통이익률 대폭 낮춰 지역농협 경쟁력 지원해야", "농민 상대 대출이자 및 농자재 판매 수익으로 농협 임직원만 억대 연봉에 풍요로운 삶...농민의 삶은?"(2024.03.12.)
지난 11일 취임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취임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농협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기자로서는 농축업인들의 심사가 왜 이렇게 심하게 뒤틀려 있는 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동안 투박한 농축산인들이 "농협은 벼룩의 간을 빼먹는 한낱 장사아치"라고 할 땐 "그래도 농축산인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정도야 할까"하며 지나쳤다.
강 신임 회장이 취임했다.
17년 만의 직선제 회장이라니 그의 취임은 분명 남다르다. 경남의 산골 합천 율곡이란 작은 동네에서 5대 연속 단위농협 조합장을 거쳐 의미가 더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차에 농협에 대한 기자의 평상심은 경남 진주에서 과수원을 하는 한 농업인의 격한 말투를 접하면서 느닷없이 무너졌다. 의협심이 생겨났다.
이 농업인은 최근 비료 공급이 제때 되지 않아 단위농협 직원과 한바탕 다퉜다고 했다.
경남 진주의 한 농업인이 지난 2월 말 비시를 하기 위해 과수원에 준비한 비료들. 농업인 제공
날이 풀린 지금은 생가리 등 농삿일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시기다. 그는 밤 과수원에 밑비료를 주기 위해 농협에 비료 신청을 했더니 비료를 주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이 농업인은 농사철이 다가섰는데 아직 비료 준비가 안 됐다는 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특히 요즘은 시설하우스를 많이 해 전통적인 농번기가 아니어도 사시사철 비료 수요가 많다. 줄 비료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곧바로 농축산식품부 관련 부서에 확인 전화를 해 따졌다. 농식품부 담당 직원은 오래 전에 농협중앙회를 통해 비료 공급 지침(공문)을 내려보냈다고 했다.
부아가 치밀었다. 농협중앙회에 다시 확인 전화를 했다. 농식품부의 말이 맞았다. 이어 농협중앙회는 단위농협에 자초지종을 확인한 듯 단위농협에서 전화가 왔다. 곧바로 이 비료를 갖다주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단위농협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농업인에 따르면, 직원은 "아직 지원금도 내려오지 않았다. 미리 비료를 공급하면 다시 정산을 하는 등 서류를 다시 고쳐야 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지원금이란 정부와 지자체, 농협이 일정 비율로 나눠 농업인에게 주는 돈이다.
정책을 만들어 '의례적으로 툭 던지는' 행태와 '주판알을 튀기는' 현장 간의 전형적인 괴리다.
단위농협 입장에선 굳이 먼저 준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지원금이 내려오지 않았는데 먼저 비료를 내주는 것보다 가능하면 비료를 늦춰 공급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었다.
비료를 받은 이 농업인은 기자에게 "평소 같으면 과수원 입구에 부려놓고 갔는데 과수원 안쪽으로 갖다주었다"며 농협의 이중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비료를 받은 뒤 최근 과수원에 시료를 모두 마쳤다. 께름칙 한 것은 이 사안이 우격다짐으로 우악스럽게 해결이 됐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장이다.
참고로 비료값 지원(무기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값이 폭등해 2022년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으로 국내에 요소수 대란이 일어나 비료값이 두 배 이상 폭등하는 등으로 연장 중이다.
2021년 8월 비료값을 기준으로 '인상분의 80%'를 정부(30%)-지자체(20%)-농협(20%)이 나눠 지원한다. 올해 1분기 현재 농가의 비료 실구입가는 판매가의 80% 수준이다.
무기질비료 판매가와 할인구매가를 주기별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요소 판매가(20kg들이)의 경우 2021년 8월 1만 600원→2022년 1~2분기 2만 8900원(할인가 1만 4250원)→2022년 3~4분기 2만 6800원(1만 3850원)→2023년 1~2분기 2만 700원(1만 2600원)→2023년 3~4분기 1만 7700원(1만 2000원)→2024년 1분기 1만 5950원(1만 2800원)이다.
복합비료 판매가(20kg들이)는 2021년 8월 1만 2400원→2022년 1~2분기 2만 6300원(할인가 1만 5200원)→2022년 3~4분기 2만 6300원(1만 5200원)→2023년 1~2분기 2만 2800원(1만 4500원)→2023년 3~4분기 2만 550원(1만 4050원)→2024년 1분기 1만 8000원(1만 4850원)이다.
이 농업인이 더 화가 난 것은 "농협중앙회에 비료가 부족하면 선지원을 하고 나중에 정산하라고 했다"는 농식품부 관계자의 말이었다.
그는 "정부 말도, 농협중앙회 말도 현장에선 씨알이 안 먹힌 현장 아니냐. 농협을 통한 농업 정책에 이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이런 실정인데 정부는 무엇을 한다. 무엇을 준다고 선심 쓰듯이 말하니 복장이 터질 지경"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는 2~3월엔 과수원에 밑비료를 해야 한다. 일반 논농사보다 과수원에 비료를 더 빨리 한다.
단위농협이 이를 모르진 않는다. 농번기를 준비하는 시기인데도 써야 할 비료가 재때 공급되지 못하는 것은 현장 농업인 입장에선 근본적인 문제로 와닿는다.
농협의 이런 이해타산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건 농사를 짓는 농업인 입장에선 자주 겪는다. 설립 목적에 충실하지 않고 이익(돈)만 쫓는다면 문제가 크다. 내놓는 정책과 농협 현장 간의 갭이 있다면, 크다면 더 더욱 그렇다.
강 회장은 단위농협장을 오래 했다.
산골 단위농협에서 거대 농협중앙회 수장이 된 강 회장은 취임 직후 농산물 산지와 유통 현장 등을 찾는 현장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상 기후로 피해를 입고 있는 농가를 방문하고 현장 농협과 로털푸드직매장·공판장 등 유통센터 등 찾아 본연의 기능을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 농협중앙회 역할 강화와 체질 개선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강 회장은 앞으로 조직 본연의 동작 시스템은 있으되 얄팍한 상행위로 농심을 갉아먹는 단위농협의 버릇화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는 단위농협과 농업인 간의 소소로운 관계까지 잘 안다. 또한 양복을 점퍼로 갈아 입고 현장에 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이것이 농촌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 회장이 '표의 값어치'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강호동 신임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5대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농협은 금융에선 이자놀이에, 농축산업에선 유통 이익으로 숱한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달리 금융에서나 유통에서나 땅짚고 헤엄만 치려고 한다는 지적을 강하게 받고 있다.
생산을 담당하는 농축업 현장에는 줄 건 제때 주고서 이해타산을 셈하는 선후가 분명한 시스템을 갖춰주길 부탁한다.
이러지 못하니 우격다짐을 동반한 민원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도출된 문제가 해결된다면 꽤 고약한 악순환이 된다. 이 농업인처럼 사사건건 목소리를 높이는 등으로 문제 해결책을 찾게 된다. 저렇게 하니, 저렇게 해야만 문제 해결이 됐고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농협 경영엔 농업인들의 불신은 계속 쌓여갈 것이다.
강 회장의 취임 일성은 "농업인의 권익을 대변하고 농축협이 중신에 서는 농협을 만둘겠다"며 "과감한 혁심을 통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12일 경기 김포와 서울 강서룰 찾아 “농축산물 공급에서 농협만의 분명한 역할과 색깔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도 '변화'와 '혁신'이란 단어를 재차 꺼냈다.
헌데 이 농업인은 "농협이 농축산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장사아치도 저런 장사아치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 말이 이 농업인에게 한정돼야 한다.
농협은 농업인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농업 설립 취지의 본령(本領)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기자가 생각해도 지금의 농협은 '노회한 장사아치'란 말 말고는 붙일 낱말을 찾기 어렵다. 이익만을 계산하는 '카운트지기'가 돼 있다는 말이다.
이 작은 조언의 글이 무릇 시간이 지나 농협에 헌사(獻辭·축하 글)로 바뀌길 바란다. 농협은 지금 초심(初心)이 지극히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