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숭아 수확 기사를 쓰다가 복숭아가 '햇빛에' 익어가는지, '햇볕에' 익어가는지가 막 헷갈리더군요.
햇빛은 '빛'이고 햇볕은 '볕'이라고 능히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구별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과일이 익는다'는 문장의 길목에서 분간력은 멈췄습니다.
복숭아는 햇빛에서 익을까요? 햇볕에서 익어갈까요?
햇빛은 '태양에서 나오는 광선', 즉 '해의 빛'입니다. 한자론 일광(日光)이지요.
눈 신경을 자극해 사물을 보게 해주는 빛을 의미합니다. 빛이 없으면 사물을 분간할 수 없지요. 따라서 햇빛은 밝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쨍하고 비쳤다', '햇빛에 눈이 부신다', '햇빛을 가리다', '풀잎 위의 이슬방울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인다' 등의 문장에서 햇빛이 쓰입니다.
달리 은유적으로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는 것'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빛은 '그의 작품은 살아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에서의 빛입니다.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을 뜻합니다.
가령 '따사로운 햇볕', '햇볕에 그을린 얼굴', '햇볕을 쬐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 양산을 쓰고 다녔다', 햇볕을 제대로 받아야 곡식이 잘 자란다' 등이 용례입니다. 이들 문장에서는 빛이 아닌 온기 등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햇볕은 해와 볕의 합성어인데, '볕'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을 의미합니다. 온기를 지닌 뙤약볕이란 단어에 쓰이는 그 볕입니다. 예컨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과 열기가 없다면 얼굴이 그을릴 수 없겠지요.
온기가 없는 달볕, 별볕으로는 쓰지 않지요. 달빛과 별빛으로 사용합니다.
'쥐구멍에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도 밝게 하는 광선만이 아닌 온기까지 내포한 의미이기에 볕을 붙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햇빛은 '빛'과 '밝기'와 관련이 있고, 장소나 공간의 개념은 아닙니다. 반면 햇볕은 따뜻함 등 '기운'을 나타내며, 장소나 공간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들 두 단어와 비슷한 햇살이란 단어도 있습니다.
햇살은 '해가 내쏘는 광선'이란 뜻입니다. 해에서 퍼져나오는 햇빛입니다.
햇살에서 쓰인 살은 원래 부채나 우산, 연 등에서 쓰는 길다랗게 쪼갠 대나무 조각입니다. 빛이 퍼지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표현입니다.
살은 또한 속으로 찌르다, 쏘다는 뜻도 가졌습니다. 화살, 빛살, 창살 등에 쓰이지요.
햇살의 용례로는 '따가운 여름 햇살', '햇살이 퍼지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햇살이 강물 위에 부서져 윤슬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가 웃자 주변이 햇살이 퍼지듯 환해졌다' 등입니다.
여기서 햇살을 햇빛으로 바꾸어도 뜻의 차는 크게 느끼지 못합습니다. 따라서 햇빛과 햇살은 같이 봐도 무방하지만 햇살은 퍼짐의 의미를 가집니다.
해와 관련한 3개 단어를 나열해 보니, 달리 구분해 쓰는 경우도 있고,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동안 기자가 이들의 구분을 잘 한다고 생각한 건 잘못된 지식이었습니다.
왜 그런가를 보겠습니다.
빨래는 햇볕에 말릴까요, 햇빛과 햇살에 말릴까요?
(햇빛의 따스한 기운인) 햇볕에 말리는 것이지요.
햇빛과 햇살은 빨래를 말리는 것에 1차 영향을 주지만, 결국 빨래는 따뜻한 온기의 햇볕이 말리는 것이지요.
햇빛과 햇살은 빨래 말림과 어울림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는 것도 햇빛이나 햇살이 아니라 햇볕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무엇을 말리다'는 문맥에서 햇살이나 햇빛이 쓰이는 용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두에서 궁금해했던 복숭아는 햇빛에 익을까요, 햇볕에 익을까요? 아니면 햇살에서 익을까요?
햇빛과 햇살보다는 햇볕, 즉 해의 따뜻한 기운에 익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햇빛과 햇살에도 익지만 궁극적으로 햇빛 등이 따뜻한 기운을 데워 익게 만든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또 따릅니다.
'쨍쨍'이란 단어와 앞에 언급한 3개 단어와의 관계입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쬡니까? 햇볕이 쨍쨍 내리쬡니까?
'쨍쨍'이 뜻을 찾아보니 '햇볕 따위가 몹시 내리쬐는 모양'으로 풀이합니다.
여기 풀이에서 햇빛이 아니라 '햇볕'이란 단어를 사례로 명시해 설명을 해놓았네요. 따라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바닷가' 등으로 씁니다.
많은 낱말은 문장(말과 글)을 쓰는 사례에 따라 그 쓰임새가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햇볕'과 '햇빛'에도 용례가 확연히 다른 경우가 있고 비슷한 사례도 있습니다.
오늘의 궁금증 답은 말리고, 익히는 것에는 햇볕으로 쓰는 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