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뜬금없다'에서 뜬금이 무슨 뜻?
정기홍 기자
승인
2023.11.20 03:46 | 최종 수정 2024.11.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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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헷갈리는 낱말과 문구를 찾아 독자와 함께 풀어보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편달과 함께 좋은 사례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뜬금없이 거기(그게) 무신(무슨) 말이고"
일상에서 쓰는 ‘뜬금없다’는 '갑작스럽고도 엉뚱하거나 뜻밖'이라는 뜻입니다.
쓰임새가 비슷한 단어는 '느닷없이'가 있습니다. 느닷없이는 '나타나는 모양이 아주 뜻밖이고 갑작스럽게'란 의미이지요. 둘의 차이는 엉뚱한 게 있고 없고로 보면 되겠습니다.
'뜬금없이'의 어원이 흥미롭네요.
옛날엔 쌀 등 곡식의 시세를 띄우는(정하는) 값을 '띄운 금'이라고 했습니다. 줄여서 '뜬금'이라고 했지요.
여기서 '띄운'과 '뜬'은 '뜨다'의 관형형이고 '금'은 돈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떠 있는 돈'을 뜻하지요. 따라서 '뜬금'은 묶여 있지 않고 시세에 따라 변동하는 물건값입니다.
'뜬금없이'의 용도를 말 뜻대로 쓰자면 '뜬금으로'나 '뜬금처럼'으로 사용해야 말이 제대로 통합니다. 뜬금없이의 '없다'는 부정으로 쓴 게 아니라 강조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장(場)에서는 이 '뜬금'으로 정해진 가격으로 곡식이 거래됐습니다. 당연히 뜬금, 즉 가격은 그때마다 달라지지요.
요즘의 큰 농수산물 거래시장에서 하는 경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조선시대에서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시중 곡물시장에는 '말감고', 즉 두감고(斗監考)'란 직업인이 있었습니다. 밀감고는 곡식을 한 말, 두 말 등으로 재는 되질을 하거나 마질을 하는 직업인입니다.
이들은 애초엔 곡물의 등급을 정하거나 부정 거래를 감시하는 일을 했는데, 점차 곡물의 기준시세를 제시해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일도 맡게 됐다고 하네요.
따라서 곡물이 장에 나오면 말감고가 값을 정해 띄웁니다. 여기서 정해진 가격, 즉 금새(물건 값)가 그날의 ‘뜬금’이 됩니다.
말감고는 되질이나 말질을 하면서 눈속임 등으로 곡식의 10분의 1 정도는 좌지우지 했습니다. 말하자면 시장의 쌀값은 이 사람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지요.
참고로 옛날 물물교환을 할 때는 주로 곡식을 기준으로 물건 값을 정했습니다. 특히 쌀은 시전(市廛), 즉 시장 가게 물가의 기본이 됐지요.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시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엔 '쌀 한 되와 미영배(목화배) 한 필의 값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식의 시세를 띄우는 값을 '띄운 금'이라고 했고 줄여서 '뜬금'이라고 했지요.
이처럼 곡물 시장에서 뜬금을 정하는 절차는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뜬금이 없으면 곡물 거래에 혼란이 생기게 되고 거래 자체가 되지 않지요. 그래서 '예고 없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일'을 '뜬금없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