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펄펄 끓는 한증막에 갖혔다.
사람도, 가축도 지쳐 기력이 빠졌고 쩌렁쩌렁 울어대던 매미도 감당 못할 더위에 지쳤는지 울음소리가 적어졌다. 여름이면 기승을 부리는 모기도 맹더위에 맥을 못 추는지 별로 없다. '극한 더위'가 모두를 삼키고 있다. 지난 3일 경남 양산에서 낮최고기온이 39.3도를 찍더니 4일엔 경기 여주에서 더 높은 40도를 찍었다.
경기 양평의 한 5일장에선 새가 좌판 그늘막 안으로 들어와 아이스팩을 바닥에 놓아줬더니 그 위에 올라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는 웃지도 못할 한여름 폭염 뒷이야기도 만들어졌다.
4일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의 잇단 폭염은 한반도에 더위를 몰고온 덥고 습한 고기압(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영향을 주는 데다 기단 주변에서 뜨거운 공기를 밀어 넣기 때문이다. 3일 낮최고기온 39.3도를 찍은 양산 등 영남 지방은 남서풍이 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해져 기온을 크게 끌어올렸다.
▶부울경 등 전국의 폭염 현황
전국 대부분 지방의 낮최고기온은 35~40도 수준을 보이고 있다. 사람의 체온은 37.5도다.
지난 3일 경북 경주 38.6도, 경남 합천 38.2도, 대구 37도, 강원 동해 37.3도 등 주로 동쪽 지방을 중심으로 극한 폭염이 이어졌다.
강원 강릉에서는 지난 7월 19일 이후 8월 4일까지 16일째 열대야가 나타나 이 지역 관측 기준으로 연속 열대야 일수 '역대 동률 1위'를 기록했다. 강릉의 이전 열대야 연속 일수 1위 값은 2013년 16일간이었다. 강릉 지역의 관측이 1911년 시작됐으니 113년 만이다.
강릉에서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3일 연속 30도를 넘어서는 '초 열대야'가 나타났다. 1일 밤 최저 기온이 31.4도로 이 지역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
강릉의 열대야는 이번 주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열대야 연속일 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기온이 25도를 넘으면 사람이 쉽게 잠들기 어렵다.
경남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경남의 경우 지난 7월의 열대야는 평균 9.8일로 30년 만에 가장 길었다. '최악의 여름'으로 기록된 1994년 9월 9일 이후 역대 2위다.
경남에는 11개 관측 지점이 있다.
창원 성산구 외동에 기상 관측 장비가 있는 북창원지점의 지난 7월 열대야 일수는 20일이었다. 이는 2008년 12월 이 지점 기상 관측 시작 이후 7월의 열대야 최다 일수다. 2위였던 지난해 15일보다 5일 더 많다.
북창원 말고도 양산 16일, 밀양 13일, 합천은 11일간 열대야를 보였다.
▶'더위 먹은' 경남, 온열환자 100명 넘어···7월 16일 이후 매일 발생
가장 높은 폭염 위기 경보인 ‘심각’ 단계인 경남에서는 지난 2일 기준으로 239명(사망 3명 포함)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지난달 16일 온열질환자가 처음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이다.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두통, 어지럼증, 근육 경련, 피로감, 의식 저하 등 증상이 나타난다. 열사병과 열탈진이 대표 증상이다.
도내 시군별로는 야외 작업장인 조선소가 많은 거제가 발생 빈도가 가장 높았다.
발생 장소는 야외작업장이 가장 많고 논밭이 그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직이 가장 많았고 농림어업 종사자가 그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가 가장 많아 야외작업장 대비책이 절실했다.
▶폭염 피해 예방 대책
경남도는 지난 7월 28일 오전 11시를 기해 폭염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해 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가동했다.
예방책은 다음과 같다. 흘려듣지 말고 지키는 것이 내 생명을 잇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폭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수분과 염분 충분히 섭취, 야외활동 자제, 식중독 주의
○ 특히 영유아, 노약자, 만성질환자 등은 외출을 자제하고 수시로 건강상태 확인
○ 가장 무더운 시간인 오후 2~5시에 옥외작업 줄이기, 작업 시에도 충분한 휴식 부여
○ 집단폐사 가능성 있으니 송풍과 분무장치 가동하여 축사 온도 조절, 가축 질병 피해 유의
○ 장시간 농작업과 나홀로 작업 자제, 농작물 햇볕데임과 병해충 발생 유의, 한낮에는 작업 중지
○ 고수온특보(국립수산과학원 발표) 발령 해역은 양식생물 질병과 폐사 발생 징후 시 관계기관 신고
○ 전력량 사용 증가로 인한 에어컨 실외기 화재 및 정전에 대비, 차량에 인화성 물질 두지 않기
▶코로나, 감기, 백일해 등 호흡기질환자도 급증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 속에서 코로나19와 감기, 백일해 등 호흡기 관련 감염병이 늘어나고 있다. 냉방병 관련 질환이다.
도내 의료기관에 따르면 발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 확진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더운 날씨에 환기를 자주 하지 않고,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실내외 온도차가 커지면서 장아졌다.
물론 해마다 냉방과 관련해 여름엔 코로나가 늘어난다.
▶고수온 위기경보 '심각 1단계' 발령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은 살인 폭염이 지속되자 지난달 31일 오후 2시를 기해 '폭염(고수온) 재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에 따라 고수온 위기경보 '심각 1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대상 해역은 제주 연안 전역을 포함해 전국 8개 해역에 고수온 경보, 7개 해역이다.
고수온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1단계-심각 2단계로 상향된다. 해역 37곳 중 15곳 이상에 고수온 주의보·경보가 발효되면 심각 1단계가 발령된다. 이날 심각 1단계가 발령됨으로써 기존에 운영하던 고수온 비상대책반은 해수부 장관이 지휘하는 비상대책본부로 격상됐다.
올 여름은 평년과 비교해 서해는 최대 4.1도, 남해안은 최대 2.0도 높은 수온이 관측되기도 했다. 기록적인 수온 변화다.
수과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다 평균 수온은 2100년까지 최대 평균 4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마 난류'(동중국해에서 쿠로시오 해류와 갈라진 해류로 동해를 따라 북상) 영향을 많이 받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수온 변화 폭이 크다.
실제 1970년 이후 부산 앞바다의 수온 상승 추세가 지구 평균보다 최대 4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전 지구 평균 수온이 10년마다 0.14도 오를 때 부산 앞바다는 0.53도씩 올랐다.
산업화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 증가 탓에 우리나라의 연안 수온은 크게 올라 있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열을 품은 '대마 난류' 유입이 늘고,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서 바닷물에 가해지는 복사열이 강해진 탓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5년 정도 후인 2050년이면 우리나라 앞바다의 평균수온은 1도 이상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8.09도였고 2050년엔 최대 19.41도까지 오른다는 예측이다.
지난 1970년 국내 연안 평균 수온은 16.04도에 불과했다. 2000년대 들어 17도를 웃돌더니 2021년 처음으로 18도를 넘어섰다.
고수온은 조피볼락, 전복 등 양식 수산물의 면역력을 약화시켜 대규모 폐사 우려가 커진다.
수온 관측 이래 가장 높은 표층 수온을 보였던 지난해 여름 경남 남해안에서 1500만여 마리가 폐사해 200억 원이 넘는 피해를 보았다. 고수온으로 인한 양식 폐사 피해가 집계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손실액은 약 2024억 원에 이른다.
정부의 통계로 잡히지 않은 부분까지 합하면 고수온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바다 수온도 높아져 주력 어종 바뀐다
고등어, 멸치 등 다른 회유성 어종도 꾸준히 적정 온도를 찾아 기존 서식지를 이탈하고 있다. 더불어 고수온은 태풍의 세력을 키우고 폭우 등 이상 기후 발생 가능성도 높여, 수산물 수급에 영향을 끼친다. 적조를 비롯해 여름철 해파리·상어 출몰이 늘어나는 것도 고수온 때문이다.
수치상 연안 수온 1도의 나비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우려된다.
한여름 수온 상승으로 양식장 어류 폐사가 잦아지고, 기존 우리의 연안에서 잡히던 어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수산물 물가가 오를 건 뻔하다. 소비량이 많아 국민 생선인 고등어, 멸치, 삼치, 방어 등이 우리 근해에서 사라지고 열대어가 줄지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양식장에선 어패류 폐사가 잦아지고 있다. 수온 영향으로 먹이 활동이나 산란 등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이 바뀐다.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20만~25만t을 잡았지만 지난해에는 10분의 1인 2만 3000여t에 불과했다.
국민 생선 명태와 꽁치, 도루묵은 1970년대 동해에서 주로 잡혔지만 자취를 감췄다. 명태는 1970년 연근해에서 1만 3418t이 잡힌 것으로 기록됐지만 지난해에는 생산량 집계 자체가 되지 않았다.
꽁치도 같은 기간 2만 5036t에서 256t, 도루묵은 1만 6110t에서 611t으로 존재 자체를 말하기 어렵게 됐다.
등도 회유성 어종으로 적합한 수온을 찾아 서식지를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반면 파랑돔, 연무자리돔 등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열대 어종이 크게 늘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2021~2023년 울릉도 연안에서 발견된 131종 어류 중 열대·아열대성 어류가 58.5%로 온대성 어류(36.9%)의 1.5배 이상을 차지했다.
문제는 열대 어종은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지 않고 다량으로 잡히지 않는다.
수과원 관계자는 “어종의 서식지 변화는 해류와 수온, 해양 오염 등 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던 많은 어종이 장기적으로 시원한 수온을 찾아 동해를 떠나 오호츠크해 방향으로 분산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남해에서 주로 잡히던 방어는 최근 동해에서 많이 잡히고 있다. 1990년 방어 어획량 중 동해 비중은 21.7%에 불과했으나 12년이 지난 2022년에는 46%까지 치솟았다.
어민들에 따르면 고등어도 그동안 주로 제주도 근처에서 산란하고 이동하지만 최근에는 서해 등 다른 지역에서 더 오래 머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산물 가격 급등 우려
매년 심화하는 연근해 고수온에 수산물 수급에 비상이 걸리며 ‘피시플레이션’(fishflation·수산물 가격 급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 선호도가 높은 대중성 어종인 명태, 꽁치에 이어 올해 오징어까지 자취를 감추면서 수산물 가격 대란을 부추긴지 오래다. 지난 4월 오징어 kg당 소비자가는 평년보다 30.6% 높았다.
수과원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오는 2025년까지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법 등을 활용한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주요 연근해 어종의 서식지 변화를 어민에게 제공하고 관련 어획 방법이나 스마트 양식 기술 개발에 나섰다.
수산 업계는 "고수온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고 국민이 선호하던 생선이 사라지고 해외 수입에 의존하면 전쟁 등 대외 변수에 가격이 출렁인다"며 "고수온 현상을 가정해 총허용어획량(TAC)을 조절하고 수산물 수입국 다각화, 고수온 내성 어류 개발, 육상 양식 상용화, 액화산소 공급기 등 장비 보급 등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