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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현장] "흉물 아닌 훈장"vs "왜군이 진주성 함락 때 쌓은 흙더미"···논란 잠 못 재운 '진주성 호국마루' 설계자 승효상 초청 강의

승 씨 20일 '건축과 기억' 주제로 공공적 가치 중요성과 건축 철학 강연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9.21 06:43 | 최종 수정 2024.09.22 20:49 의견 0

경남 진주시는 20일 칠암동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건축가 승효상(71) 씨를 초청해 '건축과 기억'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승 씨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진주대첩 역사공원 내 공원지원시설(명칭 '진주성 호국마루')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진주시는 강의와 관련해 "이번 특강은 공공건축 부문에서 친환경 건축의 대표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진주를 위해 공공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연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8일 '진주성 호국마루'로 결정된 진주대첩 역사공원 내 공원지원시설과 관련한 논란이 증폭되자 승 씨를 초청, 시민 이해를 돕고 논란을 가라앉히려는 목적도 있었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은 오는 27일, 시의 가장 큰 행사인 '10월 축제'를 앞두고 개장한다. 개장일이 이 논란으로 미뤄진 측면도 있다.

건축가 승효상 씨가 20일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건축과 기억’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승 씨는 강의에서 진주의 일부 시민단체와 시의회에서 '진주성 호국마루'가 진주성을 가리고 성을 공격하는 형상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공원 기능의 연속성 유지를 위해 공원지원시설을 계획했다"며 "역사가 기억하게끔 일어서는 땅"이라고 설계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역사공원이 수용해야 할 시설들이 이미 있었고 공사가 진행된 상태였다. 땅 속의 역사적 사실들을 드러내 노출했기 때문에 '일어서는 땅'이라는 개념을 뒀다"며 "우리의 의병이나 이런 사람들이 일어났던 역사를 기억하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진주성 호국마루' 구체적인 설계에 대해선 "상부는 전체 공원의 모습을 표현하고, 시야 각에 방해되지 않는 높이와 배치로 진주성 전면에 드러나지 않게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더불어 "최근 진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소식을 전해들었다. 건축을 한 지 50년째이지만 제가 설계한 건물을 흉물이라고 하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며 "흉물이 아니라 명예스러운 훈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주대첩광장 흉물 콘크리트 철거 대책위원회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대책위는 승 씨의 강의가 끝난 뒤 "승 씨가 땅의 기억인 터 무늬를 살린다고 했으나 이에 반대되는 설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논란은 (공사 중 발굴된) 고려토성이나 임진왜란 내성이 전혀 나오지 않는 고문서 자료만을 참고해 벌어진 일이다. 왜 자신이 강조하던 터 무늬를 없애는 설계를 했냐"고 되물었다.

대책위는 덧붙여 "경복궁 처마 밑까지, 남대문 처마 밑까지 오는 건축물을 50m 앞에 장벽처럼 가리는 건축물 세운다고 상상해 보자. 그게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 서울시장은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승 씨의 강연에 참석한 성공 스님도 "시설을 하필이면 일본군이 진주성을 함락할 당시 흙더미를 쌓아서 진주성을 공격하는 형태로 했는지"라고 묻고선 "(승 씨가) 이를 의병이 일어서는 땅이라고 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승 씨는 "땅 속에 파묻힌 역사적 진실이 드러난다는 의도로 설계했다"고 했다.

20일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건축과 기억’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 씨.

이날 강연회에는 경상국립대 건축학부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진주성 호국마루'가 논란을 빚고 있어서인지 각계각층에서 400명 정도(진주시 추산)가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식전공연도 해 일반적인 강의와 달리 구색도 크게 갖췄다.

20일 경상국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건축가 승효상 씨의 '건축과 기억' 특강 모습. 이날 강연에는 대학 건축학과 학생이 많이 참석했다. 이상 진주시

부산 출신인 승 씨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의 문하생이다. 1989년 이로재(履露齋)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는 서울건축학교 창립에도 참여했다.

미술사학자이자 노무현 정부 문화재청장(현 국가유산청장)을 지낸 유홍준 씨의 자택인 '수졸당'(1993년)과 경남 김해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2010년), 진주 출신 빈민운동가 제정구 씨의 제정구 커뮤니티센터(2021년),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2022년)을 설계했다.

문 전 대통령과는 경남고 동기로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도 설계했다.

그는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빈자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건축 미학을 완성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4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2018년 문재인 정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어 2019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트리아에서 주는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을 받았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주었다.

특강에서 승 씨는 "건축은 언젠가 무너지고 그 안에 깃든 기억만이 보존해야 할 가치"라며 이날의 강연 주제인 '건축과 기억'을 강조하며 "세월이 지나면 많은 사람의 선의가 덧대어져 건축이 아닌 장소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화려한 묘역이 아닌 추모글이 다 닳아 없어지고 기억만 남는 '비움'를 추구하며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 씨는 또 "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며 건축의 공공적 가치도 강조했다.

그는 강의 도중 대학 건축학부 학생들, 시민들의 질문 3개를 받은 뒤 자신의 책 제목이자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특강에 참석한 조규일 진주시장은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를 이끌어온 승효상 건축가를 진주에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며 "오늘 강연을 통해 그의 건축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께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조 시장의 축사와 달리 박한 평을 했다.

대책위는 "강연회는 건축 분야 시야를 넓혀주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런 강연회와 토론이 2년 전에 있었다면 우리는 아주 훌륭한 진주대첩광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진주시가 공공 건축물을 다 만든 뒤에 시민들에게 그 설계 의도를 가르치려는 강연회를 마련한 것은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또 "공공 건축물의 설계자가 시민의 의견을 들어야지, 시민이 공공 건축물 설계자로부터 교육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무식해 죄송하다고 위대한 설계자 승효상에게 머리 조아려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시민은 당신들(진주시와 승효상)이 가르쳐야 할 학생이 아니다"고 직격했다.

한편 진주대첩 역사공원은 진주 본성동 촉석루와 촉석문 인근에 조성 중이며 오는 27일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공원지원시설인 '진주성 호국마루'(연면적 7081㎡)는 ▲149면의 주차장, 다용도 이용시설을 갖춘 지하층 ▲공원·역사 시설이 들어설 지상층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22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이곳에는 진주 관광안내소, 진주성 매표소, 공원 관리 사무실, 카페&하모 굿즈샵 등이 입주한다. 또 지붕 형태의 관람석(PC스탠드)을 만들어 평소에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공연 때는 400명 이상이 앉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진주성 호국마루'는 진주성의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을 담고 호국정신을 오늘의 진주정신으로 계승해 모두가 함께 그 가치를 누리는 공간의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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