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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함께 좋은 일 하더니 '같은 날, 같이' 하늘 나라로…농촌교육 헌신했던 정지웅·김자자 교수 지난 14일 작고

정창현 기자 승인 2025.01.16 19:35 의견 0

평생을 농촌 발전에 힘써온 정지웅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와 김지자 서울교대 명예교수 부부가 지난 14일 함께 세상과 이별한 것으로 16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 교수는 향년 85세, 김 교수는 84세였다.

정 교수는 지난달 31일 갑자기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었고, 정 교수의 병간호를 하던 김 교수는 인근 운동시설에 들렀다가 갑작스레 심정지 상태로 쓰러졌다. 김 교수가 먼저 14일 오후 2시 15분쯤 세상을 떠났고, 이어 정 교수도 같은날 오후 8시 20분쯤 작고했다.

김지자 서울교대 명예교수(왼쪽)와 정지웅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의 생전 모습.새마을운동아카이브 캡처

정 교수와 김 교수는 각각 1958년과 1959년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해 선후배로 연을 맺은 뒤 1966년 결혼했다.

정 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열악했던 농촌 교육의 현실을 깨닫고 농촌 교육 개선에 뛰어들기로 하고 1학년 때부터 '농촌사회연구회'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정 교수는 1970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선진화돼 있던 국립 필리핀대에서 지역사회개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필리핀행은 김 교수가 대학 졸업 후 잠시 동아일보 기자로 일할 때 필리핀 취재를 한 적이 있어 권했다고 알려져 있다

교육사회학에 관심을 가졌던 김 교수도 정 교수와 함께 농촌 교육을 연구에 매진했다.

부부는 1973년 함께 '지역사회개발: 그 이론과 실제'라는 냈고 때마침 불던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정 교수는 1966년부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강의했다. 정 교수는 1977년 설립된 서울대 새마을운동 종합연구소에서 일하다가 1985∼1987년 이곳 소장을 맡아 새마을운동 연구에 힘쏟았다

이후 1986년 농업교육학회 회장, 1994∼1996년 한국사회교육협회 회장, 1998년 한국지역사회개발학회 회장, 1999년 한국농촌계획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아시아농촌사회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부부는 새마을운동의 해외 전파에도 크게 기여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케냐의 하람비(Harambee) 운동,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Sarvodaya) 운동 등에 큰 영향을 줬다.

2005년 교수 퇴직 후 2013년부터 4년간 한국문해교육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약시(弱視)로 운전을 못 하는 남편을 대신해 차를 몰았고 가족계획 운동과 농촌 문해교육운동도 남편과 함께했다. 한국문해교육협회에선 국제이사를 맡았다.

정 교수는 '새마을운동 아카이브'에서 "처음에는 도농 격차 때문에 군사 정부에 불만이 있었다"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그 격차가 줄어들고 농촌이 부흥을 이루는 걸 보고 '이 나라가 뭔가 돼 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농촌사회학'(1982), '지역사회개발론'(1983), '한국의 농촌: 그 구조와 개발'(1984), '사회교육학개론'(1986), '평생교육원론'(1987) 등 저서를 남겼다.

정 교수의 제자인 송병국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순천향대 교수)은 "1960년대부터 농민 교육에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지역사회개발과 문해교육으로 확장한 분들"이라고 전했다.

59년간을 해로하며 천생연분이었던 정 교수와 김 교수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02-2258-5940)에 마련됐다. 유족은 1남2녀(정광호·정선희·정양희)와 며느리 이현정씨, 사위 황용하·전우열씨 등이 있다. 발인은 오는 18일 오전 8시, 장지는 충북 진천군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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