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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부산항' 작곡가 겸 원로 가수 김용만 씨 89세 일기로 별세

지난 1953년 데뷔···1950~60년대 풍미
'회전의자', '남원의 애수', '청춘의 꿈' 등 히트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9.28 04:03 | 최종 수정 2024.09.28 19:08 의견 0

'잘 있거라 부산항'의 작곡가이자 1950~60년대를 풍미한 원로가수 김용만 씨가 27일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남원의 애수’, ‘청춘의 꿈’, ‘회전의자’ 등 히트곡을 냈다.

고인은 지난 1933년 서울 종로구에서 경기민요를 하던 국악인 김대근 선생의 5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인의 동생 김용남 씨도 대금 연주와 악기 제작을 한 국악이다.

김용만 씨가 지난 2019년 KBS '가요무대'에서 '잘 있거라 부산항'을 부르고 있다. KBS 영상 캡처

고인은 악기점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그곳을 드나들다 ‘개나리 처녀’의 작곡가 김화영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1953년 '남원의 애수'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곡이자 히트곡으로 ▲남원의 애수 ▲회전의자 ▲청산유수 ▲효녀심청 ▲청춘의 꿈 등이 있다.

1960년대 김용만 씨의 모습.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작사·작곡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잘 있거라 부산항 ▲못난 내 청춘 ▲왈순 아지매 ▲행운을 드립니다 ▲두 마음 ▲명동 블루스 ▲나비야 청산가자 등 100여 곡 이상을 작사·작곡 했다.

영화계에서도 활동해 '월하의 공동묘지'로 영화 음악감독으로 데뷔했으며 단역배우로 활동했고 많은 영화 주제가를 불렀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KBS1 ‘가요무대’ 등에 수차례 출연하며 정정한 모습으로 자신의 히트곡들을 열창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지난 7월에는 ‘청춘의 꿈’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용만 씨는 한 달 전쯤 아내를 떠나보낸 뒤 몹시 그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특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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