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헷갈리는 낱말과 문구를 찾아 독자와 함께 풀어보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편달과 함께 좋은 사례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다음 날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역대 최악의 인적·물적 피해를 냈습니다. 전국에서 28명이 숨지고 서울 면적의 80% 정도의 산림이 탔다고 합니다.
산불이 초대형화 한 단초는 '바람에 날린 불'입니다.
그런데 신문 매체에서 '불씨'와 '불티'를 혼용해 씁니다. 대부분 불티보다 불씨를 쓰더군요.
기자도 헷갈렸습니다. 날아다니는 불이 '불티'이고, 가만이 있는 불은 '불씨'인데 왜 불씨를 쓸까?
국립국어원과 신문사 교정(교열) 부서를 통해 알아봤는데 구별을 확실히 해주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개인 생각을 중심으로 구별보겠습니다. 혹여 잘못된 점이나 관점이 다른 것이 있으면 지적을 바랍니다.
단어 풀이를 먼저 살펴봅니다.
불씨는 ▲언제나 불을 옮겨붙일 수 있게 '묻어 두는' 불덩이 ▲어떠한 사건이나 일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을 뜻합니다.
산불의 경우 앞의 것이지요. 비슷한 말로 불꽃, 화원이 있습니다.
불티는 ▲타는 불에서 '튀는' 작은 불똥 ▲소요나 말썽의 원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도 앞의 것만 산불에 적용됩니다.
예시로는 '타는 불꽃에서 작은 불티가 튀어올랐다', '화마와 같은 산불에서 엄청난 불티가 4~5m 거리를 도깨비불처럼 튀었다'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예시로는 '공사장 화재 원인 1위는 작업 중에 튀는 불티'를 들 수 있습니다. 불티란 말이 자주 사용되는 사례입니다.
불똥은 ▲불에 타고 있는 물건에서 '튀어나오는' 아주 작은 불덩이 ▲심지의 끝이 다 타서 엉기어 붙은 찌꺼기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앞엣것이 산불에 적용됩니다.
비슷한 말은 불티, 한자 섬광(閃光·순간적으로 강렬히 번쩍이는 빛)이 있습니다. 섬광은 번개라고 하지요.
예시로는 '벌건 숯불에서 튀는 불똥'을 들 수 있습니다.
위의 3개 낱말 중 불티와 불똥의 뜻은 비슷합니다. 타고 있는 주불에서 '튄' 작은 불이지요.
또 '작은 불똥'(불티의 낱말 풀이 참조), '아주 작은 불덩이'(불똥 풀이)는 크기 차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이 3개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된 비화(飛火·불이 날아다님)를 알아봅니다.
이번 산불은 봄가뭄이 심해 산이 바짝 말라 있었고, 바람까지 거세 순식간에 확산됐습니다. 주민들은 "불과 5분 만에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불이 날아다녔다"고 전했습니다.
비화의 사전적인 뜻은 '튀어서 날아가 박히는 불똥'입니다. '불똥(불티)의 불씨'입니다. 불똥이 날아가 불씨가 된 것이지요.
이번 산불이 대형화한 것은 이른바 '비화 현상'으로 산불이 급속히 확산한 것입니다.
날아가는 불티를 밤에 보면 마치 '도깨비불'과 같이 튀고 이동해 다른 곳에서 불을 붙입니다. 분명 바로 눈앞에 있던 불길이 순간 사방으로 날아가 번지니 '도깨비 놀음'같은 불이지요.
산불과 관련한 각 낱말을 나눠 풀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이 기사를 쓴 이유인 불씨와 불티의 차이에 관해 살펴봅니다.
A 지점에서 타고 있는 '불'이 날려 B 지점으로 옮겨붙었다면 '불씨가 옮겨붙었다'고 해야 합니까? '불티가 옮겨붙었다'고 해야 합니까?
기자 개인적으로는 난해해 혼돈이 됩니다.
이번 산불 기사에서 자주 나온 '불씨가 강풍을 타고 날아가 마을을 덮쳤다' vs '불티가 강풍을 타고 날아가 마을을 덮쳤다'로 비교하는 게 이해하기 쉽겠네요.
대부분의 신문에선 '불씨'로 썼습니다.
기자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해 불티(불똥)가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 일간지에서 근거와 이유없이 불씨로 쓰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먼저 국립국어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 만족스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어 한 중앙일간지 교열 부서에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담당 부장이 애매하다는 전제로 "이번 산불의 경우 워낙 화력도 세고 확산 속도가 빨라 '불 씨앗'의 크기가 불티보다 좀 더 큰 불씨를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는 오로지 사전적인 잣대만으로만 판단했는데, 이 일간지 교열 부장은 기자와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불이 날아간 것이니 '불티나 불똥'으로 써야 하지만, A 지점에 있던 불씨가 B 지점으로 날아간 것이니 불씨도 맞겠다는 생각도 들긴합니다.
실제 이번 산불은 낙엽층이 두꺼워 소방 대원들이 낙엽 위로 물을 뿌려도 밑에까지 닿지 않아 불씨가 속에선 그대로 살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불씨가 강풍에 다시 불이 되살아나 10~20m씩 날아가 불씨가 되고 하니 불씨로 통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 화염이 워낙 커 불티로 하기엔 상황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이는 용접을 하다가 튀어나오는 '작은' 불티와 달리 보는 견해이지요.
이에 대해선 이번 산불이 모두 진압되고 나면 산불 현장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국립산림과학원에 의견을 물어보겠습니다. 달리 나오는 견해가 있으면 이 기사에 첨부해 올려놓겠습니다.
현재으로선 '불의 씨'인 불씨와 '불에서 튄의 불똥'인 불티가 맞서 구분하기 애매합니다.
다음, 이들 낱말과 관련된 단어들의 의미도 알아봅니다.
불티와 연관된 '불티나다'가 있습니다.
불티가 흩어지는 것과 관련해선 '불티같다'와 '불티나다'가 있는데 이는 '내놓은 물건이 빨리 사라지거나 없어질 때'를 의미합니다.
MT나 여행지에서 모닥불 주위를 둘러앉아 놀던 장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어두운 저녁 무렵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면 불티가 '탁 탁' 소리를 내고선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불티나다'란 말이 생겨났다는 견해입니다.
불똥과 연관된 '불똥이 튀다'는 관용구도 있습니다.
'사건이나 말썽의 꼬투리가 엉뚱한 사람에게 미쳐 화를 입히다'는 뜻입니다. '불똥이 언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사례입니다.
산불이 강풍에 화마로 변한 의성군의 한 고속도로변 모습. X(@snu0715)
비화(飛火)에 관련한 '비화하다'란 낱말을 알아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비화는 '튀어서 박히는 불똥'의 뜻도 있지만 '어떠한 일의 영향이 직접 관계가 없는 다른 데까지 번지는 것’을 의미하기로 합니다.
'비화하다'는 '어떠한 일의 영향이 직접 관계가 없는 다른 데까지 번지다'란 뜻입니다. 예를 들면 '그의 행동은 자격 논란 문제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입니다.
여기에서의 비화는 우리말 '후림불'과 뜻이 비슷합니다. 후림불은 '남의 옆에 있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걸려드는 일’이란 뜻입니다.
더 넓게 접근해 보면 비화란 말 속엔 '예측 불가'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산불에서 베테랑 진화 대원들도 불을 끄다가 수시로 바뀌는 강풍에 급히 철수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산불에 화를 입은 주민들도 예기치 못한 불길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예측을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 대형 산불을 두고 '비화하다'의 뜻과 비슷한 말들도 나도는 모양입니다.
산불 음모론인데, 한쪽에선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자 '산불 호마의식'을 했다는 밑도 끝도 없는 허구를 만들고, 또 다른 쪽에선 '중국인 등 간첩들'이 조직적으로 산불을 낸다는 철지난 주장도 있습니다.
'어떠한 일의 영향이 직접 관계가 없는 다른 데까지 번짐'이란 비화의 뜻과 희한하게 맞네요. 도깨비불과 같이 비화하고 있는 이들 행위가 꽤 잔망스럽습니다.
산불과 연관된 낱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구별해 쓰기가 애매해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일단 해봅니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불씨'와 '불티', '불똥'에도 이처럼 여러 상황 논리가 개입돼 영역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전의 의미는 구별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