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진실되게 뜻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그런 참다운 벗을 잃는다면 슬픔 또한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은 이런 뜻의 사자성어다. 맏 백(伯), 어금니 아(牙), 끓을 절(絶), 악기 줄 현(絃)이다.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참다운 벗을 잃은 것을 말한다.
기자는 지난해 초엔 최고의 절친을, 올해는 가장 친하게 지내던 형을 떠나보내고선 자주 이들을 그리는 습관이 생겼다. 두 사람 모두 청춘에 저 세상으로 갔다. 백아절현의 사이였기에 지금도 여전히 허전하다.
백아절현의 탄생 이야기를 알아보자.
중국 전국시대에 살았다는 도가(道家)의 사상가 열자(列子)가 쓴 '탕문'편에 나오는 애달픈 이야기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아’라는 사람은 거문고를 잘 타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의 친구 종자기는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 듣기를 좋아했다.
달빛이 사라진 캄캄한 그믐날 밤, 백아가 어둠 속에서 거문고를 뜯고 있을 때 종자기가 나타나 말했다.
“아, 달빛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백아는 종자기가 자신이 뜯고 있는 거문고 소리의 숨은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믐 밤이지만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분위기를 거문고로 탔는데 종자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종자기는 절친 백아가 어떤 곡을 연주하든 숨어 있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백아가 우뚝하게 높이 솟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곁에서 듣고 있다가 “훌륭하도다. 우뚝 솟은 것이 태산과 같구나”라고 거들어준다.
흐르는 물을 염두에 두고 연주를 하면 “멋지다. 넘칠 듯 흘러가는 것이 강물과 같구나”라며 감탄한다.
하루는 놀러 갔던 두 사람이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동굴로 몸을 피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슬퍼진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뜯었다. 처음에는 장맛비가 내리는 느낌을 연주하고,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을 연주했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맞혔다.
백아가 거문고를 놓고 감탄하며 말했다. “훌륭하다, 훌륭해! 그대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나. 내 음악 소리는 자네를 피해 갈 수 없네”
그러고서 세월이 지나 종자기는 병으로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백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고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슬픈 곡을 연주한 뒤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고, 죽을 때까지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알아줄 사람이 더 이상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마음이 서로 통하는 절친한 친구’를 뜻하는 ‘지음(知音)’도 유래했다.
한자로 알 지(知)와 소리 음(音)을 써서 음악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백아와 종자기 같은 친구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백아절현과 지음은 같은 뜻이다.
■ 참고용
맏 백(伯)자는 사람 인변(亻, 人)에 흰 백(白)으로 이룬 글자다. ‘맏이,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백부(伯父·큰아버지)에 쓰인다.
어금니 아(牙)는 위아래가 서로 물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위아래로 엇갈려 물고 있는 데서 ‘어금니’라는 뜻이다. 상아(象牙·코끼리 이빨) 치아(齒牙) 등이다.
끊을 절(絶)은 실타래의 실 사(糸)와 자르다의 칼 도(刀)로 이루어진 글자다. 실을 칼로 자른다 해 '끊다'란 뜻이다. 거절(拒絶) 근절(根絶) 절교(絶交) 등이 용례다.
악기 줄 현(絃)은 실타래의 실 사(糸)와 걸다의 현(玄)으로 이뤄져 있다. 팽팽하게 당겨서 걸어 놓은 ‘실, 줄’이라는 뜻이다. 관현악(管絃樂) 삼현육각(三絃六角) 현악기(絃樂器)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