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들은 '여론'에 관해 의외로 잘 모릅니다. 갤럽이나 리얼미터 등과 같은 조사 전문기업(기관)에서 여론조사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청와대, 각 정당 등에서 내부적으로 수시로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개별 기업도 하고 대학 등에서도 하지요. 특이한 틀도 있습니다. 사안을 먼저 흘려서 간을 보는 겁니다. 대부분 큰 이슈를 두고 합니다.
간을 보는 경우는 청와대나 정당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정식 여론조사를 하지 않고, 국회의원이나 외곽 인사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옵니다.
변방에 있는 정권의 실세나 주요 국회의원이 뜬금 없이 무엇을 주장하면 여론의 간을 보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검토'란 단어가 들어간 이슈도 이런 유에 속하지요. 검토란 여의치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거든요.
기자들은 의도를 알지요. "음, 벌써 준비해 놓고 여론을 보려는 것이군" 이러지요.
이어 몇몇 언론은 이 건에 관한 기사를 쏟아냅니다. 여론전의 시작이지요.
백성(시민)들은 요걸 갖고 시장통에서 막걸리 몇 사발에 얼콰하게 취해 "그 봐라, 저거 해야 한다고 정권 실세가 말했자나. 실세가 말했으니 되겠지" "아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짓이야" 등등 치고받습니다.
저잣거리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제언한 당에선 자체 여론조사(주로 당 여론조사 파트 담당)에 들어갑니다. 갤럽이나 리얼미터 같은 곳이 아닙니다.
이 말고 갤럽이나 리얼미터 등 여론조사업체(기관이 아님)가 조사해 수치를 내놓는 여론 조사가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많이 나오고 우리도 잘 압니다. 수치로 나오니 "그 봐라 맞잖아"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어" 등 갑론을박을 합니다.
수일 전 더불어민주당 쪽 인사의 입에서 조국 전 법무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를 특별사면해야 한다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해 보는 소리이겠거니 했지요.
며칠이 지나니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름이 이어 나옵니다. 이 말을 흘린 쪽에서의 준비한 사전 각본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정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에 부정이 많았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했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공정'이란 잣대로 보면 '조국 사태'는 부정을 부를 수 있지요. 그래서 이후 MB를 거론 했고, 오래 전부터 MB와 맞바꾸는 구도로 잡은 김 전 지사도 바로 따라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을 합니다.
빠꼼이 같은 정치권에선 이 과정에서의 찬성-반대 여론에 촉각을 세우지요.
이번 특별사면은 세간(世間)에선 어제만 해도 양쪽을 묶어서 사면을 하는 것으로 보았지요. 그런데 오늘 나온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교통방송(TBS) 여론 조사에서 3명 모두 반대 여론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지난달 29~30일 이틀간 만 18세 이상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내용을 볼까요.
먼저 정 전 동양대 교수 사면에는 찬성 30.5%, 반대 57.2%였습니다. 김 전 경남지사도 찬성 28.8%, 반대 56.9%였지요. 둘다 반대 의견이 거의 두배입니다.
MB는 찬성 40.4%, 반대는 51.7%로 정 전 교수와 김 전 지사보다 반대가 훨씬 덜하지만 아직 동정은 없어보입니다.
꼽사리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거꾸로 찬성 68.8%, 반대 23.5%로 찬성 의견이 3배에 육박했습니다. 또다른 꼽사리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은 반대(46.0%)가 찬성(36.8%)을 넘겼습니다.
꼽사리라는 건 '조사 의도의 희석'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특별사면만으로 조사 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넌즈시 던지는 거지요.
여기서 특별사면권을 쥔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을 봅시다.
지난달 25일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기자가 이들의 사면을 묻자 "국민 지지와 공감대가 필요한 일"이라고 의례적인 말로 얼버무렸지요. 이후 이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반대한 국민청원에 직접 "찬성도 많다"고 했습니다. 4명의 특별사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말이었지요.
청와대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오늘(2일) "사면을 하려면 법무부 사면심의위원회를 열어 찬반투표를 해야 하는데 아직 문 대통령이 결단을 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했습니다. 말이 그럴 듯해 보이지요?
자고이래로 청와대가 언제 물리적인 시간을 따졌나요? 부정 여론의 부담이 컸다는 뜻입니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한 여론 조사 결과가 위의 여론 조사보다 더 낮았을 가능성도 예견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 잠재 범죄자들이 '검수완박'(검찰 수사 완전 박탈)으로 쇠고랑을 차는 일을 아예 없앤다는 비난 여론에 더불어민주당은 불과 1주일 새 국민의힘에 14%로 뒤졌습니다. 지방선거가 채 한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선 지난해 성탄절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의 경우 사면 3일 전에 심의위원회를 열어 '깜짝 사면'을 한 적이 있어 또 한번의 쇼를 할지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특별사면을 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측근이던 조 전 장관과 김 전 경남지사를 위해 할 일은 해 봤다며 '마음의 빚'을 덜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MB는 다음 정권에서 사면이 될 가능성이 커 한번 찔러봐도 손해 볼 일은 아니었지요.
청와대를 비워줘야 하는 마지막 1주일에 여론을 따를 것인지, 퇴임 막판에 뒤집기쇼로 장식할 것인지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 사안을 보면서도 무엇보다 백성들의 '똘똘한 전화 한통'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