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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산책] "밭에 들깨 찌러 가자"가 사투리라고?

정기홍 기자 승인 2022.10.08 10:04 | 최종 수정 2022.10.09 11:33 의견 0

"밭에 들깨 찌로(찌러) 가자"

어제와 오늘 우연히 들은 말이지만, 들깨를 심어 놓은 밭에 가서 '들깨를 베서 말려놓자'는 뜻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오랜 격지 생활을 했던 기자는 당연히 진주를 비롯한 경남 지역에서 쓰는 사투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들깨를 찌는 모습

들깨를 쪄 놓은 모습. 이상 정창현 기자

'찌다'란 단어를 찾아 의미를 알고서 조금 놀랐습니다.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였습니다.

찌다는 통상 '살이 올라 뚱뚱해지다'라든가 '뜨거운 김으로 익히거나 데우다'는 뜻으로 쓰기에 뜻이 다른 경우에는 사투리일 것으로 어림짐작을 했었지요.

그런데 찌다란 낱말이 '나무 따위가 촘촘하게 난 것을 성기도록 베어 내다', '나무나 풀 따위를 베어 내다', '모판에서 모를 한 모숨씩 뽑아내다'라는 뜻으로 당당히 표준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주 등 경남 지방에서는 깨의 경우만 "찌로(찌러) 가자"라고 합니다. 콩은 "베로(베러) 가자"고 하지요. 물론 기계화가 안 됐던 시절 논 귀퉁이에 만든 모판의 모를 뽑아 모내기를 할 때 "모 찌로(찌러) 가자"고 하는 경우에도 씁니다.

단순히 대별을 해보면 깨나 모의 경우 줄기(대)와 잎이 무성하게 나 있고, 콩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고도 찌다는 ▲'고인 물이 없어지거나 줄어들다' ▲'기세가 꺾여 형편없이 되다' ▲'들어온 밀물이 나가다' ▲'흙탕물 따위가 논이나 밭 따위에 넘쳐흐를 정도로 괴다' ▲'머리카락을 뒤통수 아래에 틀어 올리고 비녀를 꽂다' 등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찌다'가 우리 말의 풍성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 '찌다'의 사투리도 소개합니다.

강원·경기·경상·전라·충청에서는 '끼다'의 사투리로 쓰고 전남에서는 '굽다'의 사투리로, 제주·충청·전북에서는 '찧다'의 사투리로 씁니다. 예로 '팔장끼다'를 '팔짱찌다'로 말합니다.

또 제주에서는 ▲팔이나 손을 서로 걸다 ▲시계를 손목에 두르다 ▲안경을 눈에 걸다의 사투리로 쓴다고 하네요. 제주에서는 '띠다'의 사투리로도 사용합니다.

의미는 다르지만 찌다랗다는 ‘기다랗다’의 경상·강원의 사투리이고, 찌다한은 '기다란, 긴'이란 강원 강릉의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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