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느닷없이 '심심하다'가 온라인(트위터)에서 '관심 단어'로 떠올랐습니다.
발단은 서울의 한 카페가 진행하기로 한 성인 웹툰작가의 사인회 예약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 지난 20일 이를 취소하고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문을 올리자 '심심하다고?' 등 비아냥투의 댓글이 달리면서였습니다.
트위터에는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너네 대응이 아주 재밌다' '심심한 사과 때문에 더 화난다.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앞으로 공지글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올리는 게 어떤가' 등 불만 섞인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이 말고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냐'는 댓글은 불만은 있지만 약간의 위트가 가미 됐다는 느낌을 줍니다. '짜고 맵고 시지 않고, 싱그운 사과'를 주냐는 식의 풀이도 가능해 보이고요.
'심심한'의 기본형은 다들 아다시피 '심심하다'이지요. 이 카페에서 사용한 단어는 '심심(甚深)한'입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의 뜻입니다.
심심하다는 동음이어(同音異語·음은 같은데 뜻이 다름)가 있는데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위의 댓글에선 이처럼 카페 주인이 쓴 글의 의미를 알면서도 비꼬는 것일 수 있고, 한개의 뜻만 이해해 썼을 수도 있겠네요.
언뜻 생각이 났는데, '졸지에 당하신 일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에서의 '졸지'도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졸지(猝地)는 '갑작스러운 판국'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예기치않게 좋지 않은 일을 당했거나 했을 때 주로 씁니다. 돌아가신 분의 빈소에 가면 가끔 듣는 말이지요.
'사의'나 '졸지'는 좋은 뜻을 가진 두 단어이고, 기자의 경우도 평소 요긴하게 쓰고 싶지만 쓰기가 거북합니다. 어감상 오해의 소지 때문입니다.
딱 2년전 2020년 8월엔 '사흘'(3일) 낱말의 해석을 놓고 제법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8·15 광복절을 맞아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15~17일 연휴가 생겼습니다. 이어 신문 기사에서 ‘사흘 연휴’란 단어를 쓰자 “3일인데 왜 4흘이라고 하느냐”는 등 질문이 잇따랐지요.
이 말고도 '금일'의 뜻을 '금요일'로 알아듣고 대학 교수에게 불만을 제기한 학생의 일화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일부 네티즌들은 사흘을 4일로 알고, 금일(오늘)을 금요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자가 자료용으로 따놓았던 댓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한국어가 잘못했네. 애초에 단어를 저렇게 만들면 안 되지. 사흘 나흘이 아닌 삼흘 사흘로 갔어야지'
아무튼 이를 두고 '언어의 다양성'과 '21세기 신문맹'이란 상반된 말이 나옵니다.
우선 세태(세대차)의 문제로 볼 수 있겠네요.
MZ세대 등 젊은 세대(10~40대)는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중년 이상의 기성 세대완 달리 다양한(무분별한) 인터넷 글에 익숙해져 표준말의 기준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기성인이 보면 '놀랄 노자'라고 할 정도로 언어의 사용 틀이 특별합니다.
이렇다 보니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오픈사전' 코너를 운영합니다. 이곳에서의 단어들을 보면 표준어가 아니지만 특정 세대가 자주 쓰는 단어들을 실어 놓았습니다.
어찌보면 젊은층의 말과 글의 다양성을 말함이지요. 일종의 '말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례도 많습니다.
거꾸로 '신문맹'을 지적하는 견해는 말은 민족과 국가의 기둥이 되는 요체인데, '표준어'의 기준이 무너지면 나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고 풍족하게 쓰되, 표준어는 숙지를 해야 하고 다듬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는 읽은 문장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이 무려 75%에 달한다고 합니다.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카페 글에 단 일부 댓글은 ‘심심한’의 뜻을 ‘지루하다’는 뜻으로만 알고 쓴 흔적도 보입니다.
달리 요즘 온라인에 쓰여지는 글의 상당수가 흥미롭게 읽는 '말놀이'와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박하게 말하면 '말장난'이지요.
걱정스런 것은 '이해'와 '통합'의 글이 아닌 '분노'와 '분열의 극단화 경향도 짙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즐길 수 있는 거리는 '즐기는 것'에서 끝나야 좋습니다.
오늘 '심심하다'란 단어의 용처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이어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관련해 댓글을 하나 올립니다.
- 무식의 향연 1. 봇물 터지다->여성 비하 2. 무운을 빈다->운 없길 빈다는 거냐? 3. 심심한 사과->재미 없는 사과 4. 무료하다->공짜다. 이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낱말놀이도 자주합시다. 하다 보면 재미가 붙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