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도 헷갈리는 갱상도 말] "오징어가 수루미라고요?"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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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5 08:08 | 최종 수정 2022.10.1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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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4일) 밤 친족(親族·촌수가 가까운 일가)이 모인 자리에서 한동안 잊었던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좌중의 사투리 주인공은 '수루미'였습니다. 중년 이상 갱상도 사람이면 수루미가 오징어의 사투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40대 초반 조카는 '수루미'란 단어를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했고, 나이 든 이들도 까마득히 잊고 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쉽게 보고, 쓰고, 들을 것 같은 단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갱상 지방에서도 요즘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네요.
곰곰히 생각하니 수산물을 사는 마트나 오징어 안주를 시키는 호프집에서도 오징어라고 하지 수루미라고 말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고작 전통시장 정도에서만 나이 든 어르신들 간에 "수루미 두어마리 주소"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수루미의 유래는 일본어입니다. '스루메(するめ)'인데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말린 오징어'나 '오징어 포' 정도로 표현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로 경상· 전라 지방에서 자리를 잡은 말로 짐작됩니다.
경북 지방에선 수루메, 전라에서는 수래미·수리미, 제주에선 민마구리라고 합니다. 북한 함경남도에서는 먹통고기, 함경북도에선 오딩어라고 한다네요.
뿌리도 잘 모르는 외래어(짜깁기 포함)가 범람하는 요즘이지만 일제 잔재의 말이 시장 경쟁에서 지면서 사라진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머지않아 한 세대가 떠나면 추억의 단어, 즉 사어(死語)가 될 듯합니다.
그 땐 "수루미요? 오징어요?"란 질문은 전혀 의미가 없는 때이겠지요.
참고로 오징어는 연체동물로 머리 부분에 5쌍 다리가 있고, 한 쌍의 촉완(팔 다리)에 있는 빨판으로 먹이를 잡아 먹습니다. 몸통의 끝에 지느러미가 있고, 적을 만나면 먹물을 토하고 달아납니다. 참오징어, 물오징어, 쇠갑오징어, 귀꼴뚜기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군것질거리가 흔하지 않던 오랜 옛날엔 건오징어를 불에 살짝 구어 씹어 먹던 추억도 있지요. 그 중 몸통은 씹히는 식감이 풍족해 최고의 맛이고, 딱딱한 다리는 짭짤하지만 감칠맛에 다 먹어치웠지요. 다리 위쪽에 달린 시커먼 오징어눈은 씹어먹다가 칼키 같은 딱딱한 것을 뱉어내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물론 지금도 호프 집에서 먹을 수 있지만 옛날 그맛은 아닐 겁니다.
갑오징어를 사와서 손질을 하면서 껍질을 벗길 때 길다란 반원과 같은 하얀 뼈가 나왔었는데 기억도 다시 납니다. 이 갑오징어 뼈를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지혈 효과와 위 점막 손상, 속쓰림이나 출혈에 좋다고 합니다. 버리지 말고 활용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