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도 헷갈리는 갱상도 말] "고사리 '에북' 캤네"···"에북? 어북 아입니꺼?"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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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02:23 | 최종 수정 2023.05.0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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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북'은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그런데 '에북'의 정확한 뜻을 지역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고개를 갸웃하며 얼버무립니다. 자주 쓰는데 정확히 모르니 설명을 못합니다. '제법'이란 뜻입니다. '수준이나 솜씨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음'을 뜻하지요. "에북 마이(많이) 따왔네" 이런 식으로 씁니다.
여기서 '제법'과 '많이'의 뜻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둘 다 부사인데, 제법은 '수준이나 솜씨가 어느 선에 이르렀음'을 나타냅니다. 많이는 기본형이 '많다'(형용사)인데 '수효나 분량,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넘게'를 뜻합니다. 제법은 어느 기준에 닿았다는 것이고, 많이는 기준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제법 많네'라는 말은, '많은데 어느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많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법'과 '많은' 비슷한 듯 하지만 '에북=제법'은 맞고 '에북=많이'는 틀린 것이지요.
그런데 '에북'을 '어북'으로도 씁니다. 경남 진주에서 자란 기자가 들은 경험으로는 '어북'이 주였고 '에북'은 종속으로 쓰인 것으로 가물가물하게 기억합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마을에 따라 이래 미세하게 달리 쓰이는 것이지요. 진주에서도 시내와 면 단위에서 서로 달리 쓴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언어 세계에서는 사투리를 표준어의 하찮은, 하급 말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요.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분출되고 그 가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표준말도 중요하지만 사투리도 보전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언어가 그 시대상과 지역 여건을 반영하듯 언어 문화가 다양해지면 언어에 깃든 문화도 풍족해집니다.
판소리에 구수한 지역 사투리가 가미되지 않으면 창의 멋과 맛이 살지 않습니다. 수궁가를 표준말로 바꿔 창을 한다면 아예 재미란 찾을 수 없겠지요. 말(언어)과 문화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수한 지역 사투리를 하나라도 더 찾아서 사용하면서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더 다양하게 살필 이유가 있습니다. 표준말이 한 민족과 국가의 언어 기준으로 중요하지만, 사투리도 모든 분야에서 지역의 버팀목 역할울 합니다.
진주 말 '에나'는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찾을 수 없는, 진주만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독특한 지역 사투리입니다. 이를 표준말 단어에 맞춰 고쳐 말한다면 '에나'에 담긴 진주 정신은 사그라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