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켈로부대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73주년 기념식장에서 '군번 없는' 군인들이 복무한 '켈로부대’가 화제가 됐다. 정식 부대 이름은 'KLO(Korea Liaison Office·한국 연락 사무소)', 이른바 북파 첩보부대다. 적지인 북한에 들어가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북한으로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켈로부대는 그 용맹성과 달리 음지에서만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였다. 해군특수전전단인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해군특수파괴대)' 등 특수부대보다 훨씬 극한 훈련을 하는 최정예부대다. 고아 등 가족의 연이 별로 없는 젊은이들이 가는 부대, 적진 깊은 산 중에 몇 달간 살면서 뱀, 쥐 등만 먹고 생존해야 하는 부대 등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도 돌았다. 끄집어내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시 부대'였기에 이런 여러 말이 돌았다.
그러기를 수십 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이 부대 출신들에게 제대로 된 참전용사 처우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역대 정부 처음으로 켈로부대원에게 공로금을 지급했다.
이날 장충체육관에는 이 켈로부대에서 근무했던 한 노병이 참전용사 자격으로 참석해 화제가 됐다. 현재 원자력학계 원로인 이창건(94)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6·25전쟁 당시 북한의 후방침투 작전을 맡았던 KLO 부대의 기획 참모 출신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4일 마련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이 전 회장을 초청했다.
이 전 회장은 장충체육관 행사에서 종군기자 한영섭 씨, 여성 의용군 고흥숙 씨와 함께 참전용사들을 대표해 한덕수 국무총리로부터 그 용맹스럽던 제복을 전달 받았다.
켈로 참전 용사들은 그동안 6·25 참전유공자회에서 만든 조끼를 사비로 사왔지만 정부는 이날 정전 70주년(6·25전쟁 73주년)을 맞아 이들에게 ‘영웅의 제복’을 제공해 이를 입고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를 중계한 방송 화면엔 특별한 장면이 포착됐다.
이 전 회장이 ‘제복전수식’에 앞서 자리에 앉아 펜으로 무언가를 적은 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앉은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건넸다.
이 전 회장은 쪽지에 “저는 KLO 출신 이창건입니다. KLO가 인정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2월엔 보상금과 6월 14일엔 청와대 오찬에도 초청 받았습니다.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전 회장은 6·25전쟁 때 KLO부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켈로 대원들을 대표해 참석했지만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대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까워 급하게 쪽지를 썼다”고 했다.
켈로부대 기획참모였던 이 전 회장은 “휴전협정 일주일 전쯤 북쪽으로 대원 25명을 보낸 게 사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휴전이 될 거라고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며 “그 동지들은 거의 다 잡혔을 거다. 제발 어떻게든 살아남았길 바라지만 잡힌 동지들은 북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다 죽었을 거다. 이 부분이 정말 가슴아프다”고 회한을 토로했다.
이 전 회장의 쪽지를 건네 받은 한 장관은 몇 번을 읽고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한 장관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 쪽지를 손에서 쥐고서 행사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도 쪽지를 카메라를 향해 들어 보였다. 한 장관은 "쪽지를 끼워두고 자주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켈로부대의 활약사인 'KLO의 한국전 비사'(지성사)란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어떻게 성공했고, 켈로부대원들이 어떤 헌신과 희생을 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켈로부대의 첩보전 승리로 팔미도를 탈환했는데, 만일 팔미도를 우리의 수중에 넣지 못했으면 상륙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그는 “북한군에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은 우리 동지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당시 ‘나에게 침을 뱉어도 좋으니 제발 동지들의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고 전했다.
켈로부대는 6·25전쟁 때 대북첩보를 수집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게릴라 작전을 벌였던 미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 산하 특수부대로 창설됐다. 주로 북한군이나 중공군으로 위장해 적진에 들어가 첩보 수집 등의 임무를 담당했다.
인천상륙작전 과정에는 어민으로 가장해 북한군이 인천 앞바다 근처에 설치한 기뢰를 찾아내는 등 엄청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참전용사로 인정 받지 못하고 무명용사로 지내왔다. 이유는 켈로부대원들은 정식 군번을 받은 정규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번 없이 보안이 생명인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켈로부대원들의 신원은 철저히 기밀로 부쳐졌고 부대원 간에도 서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켈로부대원들은 대원들이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전 회장도 켈로부대에선 ‘성사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정전협정 이후에도 미군이 이들의 행적을 2급 비밀로 분류했다. 안타까운 것은 ‘군번 없는 군인’이었던 대원 중에는 부대 해체 후 병역기피자로 몰려 복무를 다시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런 켈로부대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지난 1984년 켈로부대와 관련된 미국 육군성의 기록이 일반문서로 공개되면서다. 이후 1995년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에야 부대원 일부가 참전용사로 인정 받았다.
한참 후인 2021년 보상금 지원 관련 법률이 통과됐지만 미군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보상금 지급 절차가 미뤄져왔다.
한편 이들의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7월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 작전 과정에서의 켈로부대 활약상을 다뤘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지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으로 이념적인 좌경향 영화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극우 영화'라며 집요한 공격을 가해 논란을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