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말 중엔 곰곰히 생각하면 뜻이 흥미로운 게 많습니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 지방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투리 '응티(엉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응티'나 '엉티'를 사전에서 찾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엉덩이의 방언'으로 나옵니다. 경상 지방에서 쓰이는 뜻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짐작컨대 엉덩이의 사투리로 '엉치'가 있는데 표준말 엉치와 혼용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엉치란 '엉덩이 뒤 부위에서 뼈가 만져지는 부위'입니다.
경상 지방에서 쓰는 '응티'의 뜻은 억지나 고집을 뜻합니다.
예컨대 '응티를 부리다', '응티를 지(기)다', '응티가 세다' 등으로 쓰이지요.
아마 진주를 포함한 서부 경남 지역에서 자란 분들은 자랄 때 엄마 앞에서 울고 불고 하면 "응티 좀 고만 지(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겁니다. 어감상으로는 '엉티'로 조금 강하게 들리지요.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장단이 아니라 고저 특성이 있어 대부분의 말이 연음이나 경음이 아닌 격음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응티'보단 '엉티'로 들리지요.
그런데 이 단어를 포털 등에서 검색을 해보십시오. 안 나옵니다.
'엉디 또는 응디'(엉덩이 사투리)로 찾아라든가 '엉치(엉덩이 뒤 부위에서 뼈가 만져지는 부위) 등으로 검색됩니다. 기자가 자란 진주만 해도 '응티(엉티)'란 말을 너무 자주 듣고 썼고 지금도 쓰고 있기에 찾기지 않는다는 것이 의외입니다.
이런 한 지역의 주력 말들이 알게 모르게 사장되고 있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네요. 이러지 않아야 한다는 노파심도 크게 듭니다.
응티와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비교해볼만한 단어로 '응석'이 있습니다.
응석은 '어른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귀여워해 주는 것을 믿고 버릇없이 구는 일'입니다. 응티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굳이 나누자면 '엉티'가 '응석'보다 더 버릇없이 구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앙탈을 부리고 울며 보채는 '앙앙거린다'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실제 자랄 때 엄마 등에게 많이 그렇게 했었지요. 지나던 동네 어른은 "저 부모 닮아 고집이 엄청 세네"라고 하곤 했습니다.
응석에서 파생된 '응석받이'도 있습니다. '응석을 받아 주는 것' 또는 '어른들이 귀여워해 줄 것을 믿고 버릇없이 굴며 자란 아이'란 뜻입니다.
더하면 '응석'과 비슷한 말로 '어리광'이란 말도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어서 짐짓 어린 아이의 말투나 태도를 흉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 큰 자슥(녀석)이 무슨 어리광을 그리 부리냐", "또 어리광 부리나" 등으로 씁니다.
자주는 쓰지 않는데 '어리광쟁이'도 있는데 '어리광을 잘 부리는 사람'입니다. '응석받이'와 같은 말이지요.
대체로 어리광을 부릴 때는 보통 질질 짜거나 크게 울면서 보챕니다. 부모 등이 귀여워해 줄 것을 믿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엉티'를 지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릿광쟁이'와 어감이 비슷해 보이는 '어릿광대'는 비슷해 보이지만 '광대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나와 재치 있는 말이나 짓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입니다. 전혀 다른 뜻의 단어입니다.
옛 부모는 애가 엉티를 지겨도 크게 야단을 치며 교육 잣대는 대체로 분명히 했습니다. 애지중지하는 요즘 부모들관 달랐습니다. 가정 교육을 엄히 시키는 편이었습니다.
요즘 시대상과 연결해보면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란 말이 떠오르네요.
이는 헬리콥터처럼 자식들 위에서 떠다니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국내에서도 쓴 지 오래된 단어입니다.
반대로 개념의 '캥거루족'이 있습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자립심이 부족해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20대 후반이나 30대, 심지어 40~50대에도 부모에게 빨대를 꽂고 사는 족속들입니다. 대체로 말투나 행동엔 치기 어린 어리광이 남아 있고 칭얼대기도 합니다. 어떨 땐 의식적으로 고함을 치고 '응티'도 셉니다. 이들의 이상 행동은 '어리광→엉티→버럭 화→변명', 이런 식으로 옮아가지요.
그런데 왜 결혼도 않고 그렇게 부모에 기대 사느냐고 물으면 그럴듯한 변명이 많습니다.
이런 행동은 부모가 수십 년간 용인을 해주고, 그런 부모 밑에서 기대는 의식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헬리콥터나 캥거루족이나 모두 부모가 만든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단호하게 키워야 독립심이 강해집니다. 또 성인이 되고 독립할 정도의 나이가 됐으면 나가서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야 하지요. 40대 이상의 나이에 부모에게 기댄다면 '병적 증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을 가진 젊은이가 너무 많다는 게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 부리던 '응티'가 지금엔 30~40대에서도 진행된다는 사실이 씁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