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이 정도면 약과'에서 약과는 먹는 것?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5.21 18:42 | 최종 수정 2023.10.13 19:30
의견
0
한자인 약과(藥果)를 풀이하면 '약 약(藥)'에 '열매 과(果)', 즉 약이 되는 열매의 뜻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서 모양을 낸 뒤 기름에 지진 과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한 것이 다행',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나타냅니다.
"김 부장에게 엄청 쿠사리(핀잔) 먹었다고? 그 부장의 성질머리는 참 못됐어. 그 정도는 약과야. 사표 써라는 말도 너무 자주 해"(사례)
여기서의 '약과'의 뜻은 '음식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당할 수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음식인 약과라는 말이 왜 이런 엉뚱한 뜻이 됐을까요?
약과는 고려 시대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약과는 밀가루에 꿀과 기름을 섞어 만드는데 먹을 게 많지 않던 당시엔 맛이 독보적이어서 왕족과 귀족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서민들로선 언감생심,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지요.
이렇게 귀한 약과는 조선시대엔 제사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귀한 음식이니 조상께 올리려고 했겠지요.
그리고 제사를 모시고 나면 약과는 집안의 최고 어른에게만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사에 참석한 친척들이 이렇게 귀한 약과를 하나씩 집어 먹는다면 주인 입장에선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친척이어서 말은 못하고 속만 태울 수밖에 없겠지요. 보통 이런 유의 사람이 욕심이 많아 집안의 다른 것도 더 탐합니다. 집안에서 가꾼 곡류와 과실이나 채소 등을 막 달라고 하겠지요.
이래서 '차라리 약과만 먹으니 다행'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억지로 만들어낸 느낌도 있지만 그랬다고들 하니 일단 믿어야 하겠습니다.
달리 좋은 뜻으로 쓰면 좋겠네요.
지내다 보면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생깁니다. 그럴 때 "그 정도면 약과지(그만하면 다행이지)"라며 훌훌 털어버리는 말 습관도 몸에 배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