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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멈춰서 읽는 시] 건설업체 대표 신영학 시인의 '흔적일랑'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2.22 01:01 | 최종 수정 2024.03.09 23:46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운동길과 산책길에서 자주 보는 입간판 시를 소개합니다. 대체로 쉬운 시구여서 누구에게나 와닿습니다. 걷다가 잠시 멈추고서 시 한수에 담긴 여유와 그리움, 애틋함들을 느껴보십시오.

시 가운데에는 흥얼거릴 정도의 쉬운 시구로 뭇 시정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가 많습니다.

신영학의 시 '흔적일랑'은 단순반복 시구를 구사하지만 읽는 이에게 순수 그리움의 시상(詩想·시적 상념)을 담아 건넵니다. 건설업을 하고 있는 신영학 시인은 늘리 알려진 시인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돈 버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건설업과 시는 영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언필칭 시란 게 읽는 이의 감정과 접점이 잘 이뤄질 때 가치를 발휘합니다. 이 때문에 '그림과 시'는 각자에게 직감적으로 와닿는 느낌 그 자체가 진정한 감상 포인트라고도 합니다. 평론가가 어떤 현학적 분석을 하든 느껴지는 것이 예술의 진가란 말이지요.

신영학의 시 '흔적일랑'은 지난 2007년 8월 펴낸 시집 '알몸뚱이'에 실린 시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 강서구 우장산 기슭 입간판에 세겨진 '흔적일랑' 시. 정기홍 기자

<흔적일랑>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

흔적일랑

온유하게 남겨 놓으소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

흔적일랑

곱고 아름답게 남겨 놓으소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

흔적일랑

향기롭게 남겨 놓으소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

흔적일랑

맑고 맑은 모습으로 남겨 놓으소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

흔적일랑

사랑으로 남겨 놓으소

가신 뒤에 흔적은

님의 모습 보기 좋으시어

가신 님 좋게 기억하오리다

'흔적일랑'은 '가시고 오실 일 없다 해도/흔적일랑'을 간결하고 짧은 군더더기 없는, 어찌보면 할 말을 다 못한 문장을 반복합니다.

여기엔 사랑과 관심, 헤어짐, 그리움과 남은 자취 등 만남과 이별을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대상을 달리 대입시킬 수도 있습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서의 심오한 '님'의 해석처럼 대상울 넓혀버리면 시인이 말하려는 '흔적'의 초점이 흐려질 우려가 있겠지요.

단지 흔적의 대상을 바꾸는 단순함에도 '남겨 놓으소'란 반복 시어가 지난 흔적의 애뜻함을 서정성으로 도드라지게 합니다. 시는 이미 헤어짐, 인연의 끈을 놓았지만 애뜻한 지난 일의 켜는 곱게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흔적의 시상을 '온유하게', '곱고 아름답게', '향기롭게', '맑고 맑은 모습으로' 등으로 대상을 바꿔줍니다.

다시 말해 지극히 단순한 시구인데도 절연의 서정성 시구로 독자의 속마음을 잡아놓습니다.

반복 구사한 '놓으소'란 높임말임에도 격의없음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시인은 반복 시구의 마지막 단에서 흔적의 분위기를 돌려 놓네요.

'가신 뒤에 흔적은/ 님의 모습 보기 좋으시어/ 가신 님 좋게 기억하오리다'에서는 가신 님의 흔적을 아쉬움으로 삭이며, 일부러 지극 존칭을 활용해 좋은 기억으로 삼겠다는 것을 배가시켜줍니다. 긍정의 시상을 던져줍니다.

시란 해석하려는 자체가 '우둔한 행위'라는 주장도 합니다. 느낌 자체로 끝내라는 것이지요. 각자가 느낀 감정이 더 맞다는 말입니다.

이 시와 신영학 시인의 시풍을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 그의 두 번째 시 '봄'을 소개합니다. 시절에도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시집 '하늘꽃 당신이'에 실렸습니다.

<봄>

실개천 물 졸졸
길섶 지키는
능수버들

연둣빛 새 옷 입고
하늘하늘
춤추네

넓은 들
여린 풀잎 솟아
포근한 자리

산과 들
하얀 꽃, 노란 꽃
분홍 꽃

아지랑이 곱게 오르는
파란 하늘
사랑 찾는 새가 운다

꼬챙이 말을 들어놓는 평론가들이 절제미에서 찾은 '언어의 향기'를 즐기기에 충분하고 의미를 준 시입니다.

실제 신영학 시인의 시구는 정제미와 함축성을 지닙니다.

앞의 두 시에서도 보듯 긴 수식어나 진부한 설명보다 간결하고 짧은 시구로 시상을 펼쳐냅니다. 시가 가진 간결한 함축미로 살려 서정의 여운을 남겨줍니다. 그의 시 세계는 맑고 순수합니다.

신영학 시인의 함축적이고 절제된 시 세계가 그의 오랜 직업인 건축업과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까요? 억지스럽지만 연결을 못 시킬 이유도 아닙니다.

건축업도 간결해야 합니다.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은 넣어야 하고 넘쳐도 부족해도 안 되고, 아귀도 잘 맞춰야 하겠지요.

그의 시는 불필요한 표현을 자제하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잘 다듬어냅니다.

그의 시제(詩題·시의 제목)들은 누구나 들여다볼만한 낯설지 않은 것들입니다. '님 오실 길', '달 따러가네', '남기고 간 사랑', '님이 가시네' 등은 일상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그리움과 아쉬움, 뭉클함과 설렘을 순수함으로 버무려 독자에게 선물합니다.

이처럼 신영학 시인의 시상은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허해진 현대인에게 가식없는 순수 언어로 다가섭니다.

■신영학 시인은?

시집은 '알몸뚱이', '하늘꽃 당신이'가 있고 공저 '백란문학' 동인지 외 다수가 있습니다.

백란문학연구회 회원이자 서울 강서문인협회 회원입니다. 작은사랑실천운동본부 부이사장 직함도 갖고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중견 건설업체 하상건설 대표로 있습니다.

지난 1997년 설립해 교회와 학교, 사회복지시설 등을 중심으로 시공하다가 브랜드 '아우름'이란 이름으로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첫 고급빌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한솥밥·나눔 경영'으로 사랑과 평화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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