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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멈춰서 읽는 시] 영화 '워낭소리' 애틋함 불러낸 김종삼 시인의 '묵화(墨畵)'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9.08 15:34 | 최종 수정 2023.09.09 00:14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운동길과 산책길에서 자주 보는 입간판 시를 소개합니다. 대체로 쉬운 시구여서 누구에게나 와닿습니다. 걷다가 잠시 멈추고서 시 한수에 담긴 여유와 그리움, 아쉬움들을 느껴보십시오.

묵화(墨畵)는 '먹으로 짙고 옅음을 이용해 그린 그림'입니다. 색을 배제하고 선의 강약과 먹의 번짐, 여백의 미를 이용한 대표적인 동양화 양식이지요.

시인은 이러한 묵화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바꾸어 이 시를 썼습니다. 제목 '묵화'의 농담(濃淡·짙음과 옅음)처럼 소와 할머니 두 대상이 애틋함을 이심전심으로 주고 받습니다. 김종삼의 '묵화'는 시인이 중광 스님의 ‘심우도’(1978년)를 보고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입간판 시구가 군데군데 희미해 적어봅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시는 6행, 즉 6줄로 구성되고 한 행의 길이도 10자 이하로 굉장히 짧습니다.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이용한 것으로 길이가 짧아 구체적인 배경 묘사와 서사가 생략되며 시적 대상인 '소'와 '할머니' 자체에 주목하도록 만듭니다. 할머니와 소가 한 폭의 묵화 속에 자리합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인 '워낭소리'(2009년 1월)에서 무려 마흔 살을 먹은 소를 바라보는 팔순 할아버지가 다가섭니다. 갈고, 끌고, 지면서 사십여 년을 동고동락 하며, '한솥밥'을 먹어 온 일소였지요.

시를 다시 읽어보시죠.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들에서 종일 논밭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외양간에서 고삐를 매고서 하는 흔한 모습입니다. 아니면 고된 일을 끝내고 해가 니엿니엿 넘어가는 논과 밭 가의 어느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라면 일기 쓰듯 큰 고민없이 저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이게 시입니다. 온갖 지하 수십 층에 있는 단어를 살려내 구사하는 시도 있지만, 쉬운 일상의 단어들로 사물과 동물에 사람의 감정을 이입하는 시도 많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로 능동형으로 하지 않고 '얹어졌다'란 피동형을 가져왔습니다. 할머니도 하루 일에 피곤하지만 더 힘들었을 소에 대한 애틋함을 전합니다. 소도, 할머니도 서로의 내심을 느끼는, 말 없는 이심전심입니다.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기자는 여기에서 '쉼표(,)'를 주시합니다. '~고'라는 동어반복에다가 쉼표도 반복됩니다.

말하자면 운율이지요. '운(韻·rhyme)'은 유사한 발음의 규칙적 반복을 뜻합니다.

쉼표는 여백이라 해도 되고 여운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함께 지냈고, 발잔등이 붓고, 할머니나 소 둘 다 적막하다는 것을 쉼표로 강조합니다. 이래서 여기서의 여운은 더 진하게 남습니다.

달리 눈에 띄는 건 '함께', '서로', '서로'입니다. 유대감이지요.

따라서 이 시가 주는 감성은 '소와 할머니'의 동병상련입니다.

소는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물을 들이키고 할머니는 물을 먹는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어 수고했음에 고마움을 말없이 전합니다. 소와 할머니의 교감입니다. 이 교감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물도 먹이고 몸에 붙은 진드기(경상 사투리론 가분다리)와 쇠파리(말파리) 등을 잡아주고 대빗자루로 등도 빗어주면서 가까워집니다. 연민이겠지요.

시인의 시상을 마무리 하는 '연결 어미(~고)'와 '쉼표(,)'로 연민의 여운을 더 진하게 드러내면서 시를 끝마칩니다.

독자로선 소와 할머니가 든 단순한 묵화를 보며 매우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습니다. 시와 그림은 읽는 자와 보는 자에게 다가오는 느낌 그것이 맞다고 합니다. 굳이 전문가 그룹이 애써 이리 돌리고 저리 틀면서 전문 언어를 동원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제언하는 분석 틀은 각 개인의 감정으로 와닿는 것에 대한 도움을 줄 뿐입니다.

■ 김종삼 시인은?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84년에 사망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등단은 1953년 신세계에 시 '원정(園丁)'을 발표하면서입니다.

평양 광성보통학교, 숭실학교를 거쳐 도쿄 토요시마상업학교를 졸업했고 1942년 4월 도쿄문화원 문학과에 입학했지만 1944년에 중퇴했네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캡처

도쿄문화원 문학과 중퇴한 그해부터 도쿄출판 배급주식회사에서 일했고, 1947년에는 극단 '극예술협회' 연출부에서 활동했습니다.

1953년 '군 다이제스트'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원정(園丁)'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1957년엔 우리 귀에 익은 김광림, 전봉건 시인과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펴냈고, 1968년에도 김광림, 문덕수 시인과 3인 시집 '본적지'를 냈습니다.

혼자 쓴 첫 시집은 '12음계'(1969년)인데 이후 '시인학교'(1977년), '북치는 소년'(1979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년), '평화롭게'(1984년) 등을 발표했다.

1950년대 시작 활동을 김종삼 시인은 특히 한국전쟁(1950~1953년) 체험에서 비롯된 전후 의식을 공소(空疏·내용이 없음)하지 않은 미학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시는 평화의 세계를 끊임없이 갈망하면서 전개됩니다.

초기의 시에서는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대상이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 음악의 세계가 노래됩니다. 대표작의 하나인 '북치는 소년'이 이 부류입니다.

하지만 중기에 오면 '물'에서 '돌'의 이미지가 시의 중심을 이루면서 고통과 죽음의 세계를 천착합니다. 이은 후기 시에서는 지상의 삶에 대한 연민, 즉 애정이 어립니다.

시 작품은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12음계', '북치는 소년', '시인학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큰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 '그리운 안‧니‧로리', '김종삼 전집', '묵화', '물통', '민간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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