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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품앗이 하는 사람 '놉'

정기홍 기자 승인 2023.11.14 02:51 | 최종 수정 2023.11.17 14:54 의견 0

한때 영어를 잘 하는 방법 중에 사전을 삶아 먹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실제 그렇게 한 사람도 봤습니다. 영어에 죽고 살만큼 중했다는 말이지요.

언제가 우연히 펼친 국어사전에 어감과 풀이가 고운 낱말들이 많아 틈 나는 대로 줄을 쳐놓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놉'이란 단어를 풀이한 글을 읽다가 난생 처음 본 단어라 적이 궁금해 더 찾아보았습니다.

놉은 '하루하루 품삯과 음식을 받고 일하는 품팔이 일꾼이나 일꾼을 부리는 일'을 뜻하더군요.

며칠 전만 해도 바쁜 가을 추수철이라 이 계절에도 맞는 말입니다.

기계화가 안 됐던 예전 가을은 부지갱이도 들썩인단 말처럼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점심도 들로 내다 먹었지요.

몸빼에 점심 반티를 이고 물주전자를 들고 좁은 논둑길을 와서 부려놓고 잠시 쉬다가 벼를 베었지요.

여기에 놉을 들여 일할 때는 농주(農酒)를 빠뜨리면 안 되지요.

요즘 말론 '시간제 알바'인데, 놉과 일바란 단어의 느낌은 너무 다릅니다. 정이 풍기는 엣것과 무미건조한 현대 것의 차이입니다.

놉의 뜻과는 다르지만 동네 옆집 간에 품앗씨가 있었지요. 품삯 즉 요즘 말로 일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이집, 내일은 저집으로 품을 팔지요. 모내기 철에 동네 분들이 한 집에 몰아서 함께 모를 내는 것이 사례입니다.

여담으로 기자가 아주 어릴 때 본 일인데, 베어놓은 벼를 탈곡하기 쉽게 작은 볏단으로 뭉치는 일을 할 때입니다.길 가던 어떤 이가 일을 해주겠다고 해서 점심과 농주를 대접했는데 "안 해본 일이라 못하겠다"며 안면을 꺼고 가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일삯을 주기로 했는데 말이지요.

소위 마뢔 놈팽이인데, 농주와 점심을 얻어먹고 싶어 기자의 아버님을 홀린 거지요. '놉'의 뜻을 접하니 '놈'이란 말이 와닿습니다.

놉, 자주 써 일상화하면 참 좋을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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