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속담 순례] '게으름뱅이 7, 8월에 애닯다'(11)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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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1 12:06 | 최종 수정 2023.09.0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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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속담 '게으름뱅이 7, 8월에 애닯다'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베짱이처럼 맨날 빈둥빈둥 놀던 농사꾼이 농사가 제대로 안 됐다며 후회하고 뉘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닯다는 애달프다의 준말로, 마음이 안타깝고 애가 탄다는 뜻입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이른 봄부터 쉼없이, 빈틈없이 때에 맞춰 농사를 관리해야 하겠지요. 늦여름과 초가을인 음력 7월, 8월이면 한해 농사는 이미 결판이 나는 시기입니다.
게으른 농부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벼 농사의 경우 요즘같은 피만 죽이는 농약이 나오기 전인 옛날엔 벼논에 피가 많이 났습니다. 피란 조나 수수같이 생겼고 곡류인데도 잡초로 여깁니다. '피쌀'이라고도 합니다. 한동안 사라졌던 피는 최근 친환경 농법이 확산되면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벼보다 잘 자라 벼논을 보면 유난히 키가 크고 줄기가 굵어 억세보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벼보다 비료 등 영양분을 잘 빨아들이지요. 당연히 벼의 성장을 막습니다. 농업인들은 이를 "벼가 피에 치인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나오는 등 어느 정도 크기 전엔 벼와 매우 비슷해 농사가 어설픈 초보자는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지요. 자세히 보면 밑줄기가 벼보다 굵습니다. 여름방학 등에 집안 학생 등이 부모님을 돕는다고 피를 뽑지만 벼를 뽑는 게 허다했지요. 피를 뽑아 제거하는 것을 '피사리'라고 합니다.
둘째 가라며 서러울 게으름뱅이의 벼논은 벼가 익어갈 무렵까지도 피를 뽑지 않아 논 가운데 유난히 큰 키의 피가 누런 씨앗을 맺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씨는 논바닥으로 떨어져 다음 해에 또다시 나는 악순환을 겪게 되지요. 당연히 벼의 소출은 줄어듭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게으른 놈 7월에 후회한다'(전북 고창)가 있습니다. 벼는 농업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과 의미가 같습니다.
이 속담은 어느 일에서나 마찬가지로 적용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