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겨울의 단어인 '한파(추위)'와 '폭설(눈)' 관련 속담을 소개합니다.
'찬바람에 죽은 보리 폭설에 살아난다'. 이 속담은 눈과 관련한 겨울철 속담입니다.
북풍한설(北風寒雪·북쪽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 동장군(冬將軍)이 몰아닥쳐 보리가 얼어 죽다가 때마침 내린 폭설이 이불 역할을 해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 와닿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은 눈과 관련이 있기어 '눈 이야기'를 우선 해봅니다.
먼저 대설(大雪)입니다. 큰눈이지요. 폭설(爆雪)이라고도 합니다. '폭'자는 이 속담에서보긋 예부터 사용했는데 어쩐지 대설보다 피해를 더 많이 주는 느낌으로 와닿습니다.
절기에도 대설이란 용어를 씁니다.
대설은 소설과 동지 사이에 있는데 24번째 중 21번째 절기로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란 뜻을 지닙니다. 다만 정기는 중국 황허(黃河)강 일대인 화베이(華北) 지방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나라와는 시기가 약간 안 맞기도 합니다. 또한 부울경엔 경남북서부 일부 지역을 빼곤 눈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은 겨울철 보리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고 보온 역할을 하는 이불 역할을 합니다. 동해(冬害)를 막는 것이지요.
예부터 대설에, 즉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론 ‘눈은 보리의 이불’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일부 지역을 빼곤 이모작으로 겨울보리 농사를 많이 지어왔습니다. 따라서 칼바람이 칠 때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이불처럼 엎어줘 보온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보리가 동해를 적게 입어 수확철 풍년이 듭니다.
여기서 더 알면 좋은 게 있습니다.
'겨울 보리밭은 밟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데 '찬바람에 죽은 보리 폭설에 살아난다'는 속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겨울에 날씨가 추웠다가 풀리는 일이 반복되는데 이때 보리밭에 서릿발이 숭숭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칼바람이 들어와 뿌리가 말라죽게 됩니다.
참고로 서릿발은 '땅 속의 수분이 겨울철 지표면에서나 땅 속에서 얼어붙거나 위로 솟아 만들어진 얼음 기둥'입니다. 늦가을에 내리는 서리와 전혀 다른 뜻입니다.
겨울철에 보리를 자주 밟아주면 토양 속의 수분 증발을 억제하고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어, 보리가 더욱 잘 자라게 됩니다.
중년 이상 분들은 소싯적에 학교에서 보리밟는 행사를 한 기억이 생각날 겁니다. 보통 봄에 하는데 겨울철에도 해야 하지만 추워서 못하고 날이 풀리는 이른 봄에 하는 것이지요. 또한 보리가 봄을 맞아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기에 땅을 밟아주면 서릿발 등으로 몇 개 안 남은 보리뿌리가 다시 자리를 잡고 왕성하게 뻗어 자랍니다.
속담 '찬바람에 죽은 보리 폭설에 살아난다'는 이 말고도 겨울 가뭄과도 연결지을 수 있지요.
겨울철이라도 눈이 적게 오면 물이 부족해 보리 발육에 지장을 줍니다. 물론 추위에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 눈이 많이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보리는 봄에 쑥쑥 자랍니다.
다만 워낙 눈이 안 오면 여름 기우제(祈雨祭)처럼 겨울 기설제(祈雪祭) 풍습도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관수시설(물 대는 시설)이 잘 구비돼 있어 걱정은 없지만 기후 변화가 심해 겨울 가뭄도 자주 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겨울인만큼 눈이 펑펑 내리기를 고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온천지가 하얗게 변한 설국은 설레게 하는 대단한 운치이지요. 하지만 농업인에게도 눈은 많은 영향을 주기에 적당히 와줘야 합니다.
부울경에선 지리산 인근인 북서부 지역을 빼곤 눈이 잘 안 옵니다. 하지만 큰 추위도 덜한 편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속담은 추위도 심하고 눈도 많이 오는 중부 이상 지역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날씨는 종을 잡기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