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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람도 헷갈리는 갱상도 말] "고마 치아라 마" 논란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3.26 21:30 | 최종 수정 2024.03.30 12:10 의견 0

부산·경남에서 너네 없이 자주 쓰는 말이 엉뚱한 곳에서 사달을 냈습니다. 논쟁의 범인은 "고마 치아라 마"입니다.

SBS의 시사프로그램인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의 편상욱 진행자는 지난 22일, 전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부산에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이제 고마 치아라 마"라고 외친 것을 두고 "'이제'까지는 알겠는데 '고마 치아라 마' 이거 일본어인가요”라고 웃으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조 대표는 전날 지지자들에게 "고향 부산에 온 만큼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산 사투리로 경고한다. 이제 고마 치아라 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제 그만 치워라'라는 뜻이지요.

당시 방송 내용을 보겠습니다.

편 앵커는 이날 패널로 나온 최선호 SBS 논설위원에게 조 대표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건 부산 사람인 최선호 논설위원에게 번역을 요청하겠다"며 "'이제'까지는 알겠는데 '고마 치아라 마' 이거 일본어인가요”라고 물으며 웃었습니다.

최 위원은 "이제 그만해라 이런 얘기다"라고 답하자 편 앵커는 "이게 지금 무슨 뜻이냐. 그러니까 자기가 정치적 세력을 이루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 뭐 이런 뜻인가"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딱 여기까지가 말한 맥락입니다.

조 대표는 이와 관련해 26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편 앵커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 말이 인격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큰 논란거리는 아닌 듯 보였지만 시절이 선거철이라서 이슈화 하려는 '바이럴(viral·입소문) 전략'으로도 보여집니다.

부산·경남에 사는 분들은 "별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접근하네"라거나 "저 말도 이슈가 되네"라고 의아해하거나 반문을 할 수도 있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투리 '고마'와 '마'의 뜻을 사전적으로 살펴보면 헷갈리게 돼 있습니다. 편 앵커 말고도 평소 별 생각없이 이 말을 쓰던 경상도 사람도 다음 사례와 풀이를 보면 "이런 다른 내용이 있네"라고 할 겁니다.

'고마'는 쓰이는 곳에 따라 뜻이 약간 달라집니다. '그냥'(그런 모양으로 줄곧), '그만'(고 정도까지만) 등 둘로 나뉩니다.

'그냥'의 뜻 사례는 "고마 확 쎄리삘(뿔)라"가 있습니다. 이 문장의 뜻은 "그냥, 확 때려버릴라"입니다.

'그만'의 뜻 사례로는 영화 '친구'에서 동수역의 장동건이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해라”라고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고마는 '그만(그 정도까지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고마 치아라 마"에서의 고마의 의미는 약간 애매하네요.

여기서에의 고마는 '그만'으로 해석하는 건 맞습니다. 다만 경상도 사투리에 애매한 표현이 많은데 '그냥'의 의미로 봐도 무리가 없어보이네요. "그냥 치워라 마"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럼 문장의 마지막의 '마'는 어떤 의미일까요?

설이 몇 개 있습니다. 이는 사투리로 어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마'에 관한 설은 ▲'인마(이놈아)'의 줄임말 ▲맨 앞의 고마를 다시 강조한 준말 ▲별 뜻없이 덧붙인 '감탄사'라고 합니다.

앞의 둘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지만, '마'를 감탄사로 보는 이유는 언뜻 와닿지 않습니다.

경남 진주여고 출신인 박경리 선생의 유명 대하소설 '토지'에 '내사 한기가 들어서 턱이 덜덜 까불린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의 마가 감탄사 역할을 합니다. "고마 치아라 마"에서의 '마'와 유사합니다.

따라서 조 대표가 한 "이제 고마 치아라 마”는 "이제 그만 치워라 이놈아"이거나 "이제 그만 치워라 그만", "이제 그만 치워라 치워"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네티즌은 편 앵커의 말을 두고 "부산 사람들 다 일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거다" 등 지역 비하라며 문제를 제기하는군요. 여론이 좀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편 앵커는 26일 같은 방송에서 사과를 했습니다.

편 앵커는 "가볍게 시작하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조 대표와 부산 분들이 들으시기에 불쾌할 수 있었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여론의 민감성을 언급한 것은 부산·경남, 특히 부산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을 들어 한 말입니다.

이 논란처럼 부산·경남의 사투리에는 억양이 억센 데다 일본말투가 섞인 말이 제법 됩니다. 특히 부산엔 변형된 일본말을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가라오케, 즉 노래방도 일본에서 부산으로 가장 먼저 들어와 전국으로 확장됐습니다. 예전 부산에선 국내에서 시청이 금지됐던 일본 위성방송이 잘 잡혔다고 합니다. 그만큼 일본이나 부산이나 서로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말과 일본말은 서로 성조(聲調·소리 높낮이)와 장단음이 비슷하게 들린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경상도 사람이 일본말 배울 때 억양이 비슷한 데가 많아 따라하기 쉽다고 하는 말을 더러 들었습니다.

기자가 어릴 때 일본에 건너가 돈을 번 어르신이 친척집에서 와 일본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부산·경남 말은 일본말과 억양이 비슷해 배우기 쉽다고 한 말도 기억합니다.

편 앵커의 말처럼 부산 사투리를 자주 접하지 않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제 고마 치아라 마"란 말을 들으면서 일본말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기(驚氣·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증상)성 반응을 가질 이유는 크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평소 별 생각없이 쓰던 이 문장을 뜯어보니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지요.

덕분에 부산·경남 사투리를 더 잘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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