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파리]할머니 유언에 일본 국적 포기...’독립투사 손녀’ 허미미 은메달 땄다
천진영 기자
승인
2024.07.30 11:26 | 최종 수정 2024.07.30 22:11
의견
0
"다음엔 꼭 금메달 따겠습니다"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독립투사 후손’ 허미미(22) 선수가 아쉽지만 귀중한 은메달을 따냈다.
허미미의 유도 메달은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정보경 선수가 48kg급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8년 만이다.
허미미는 29일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 유도 57㎏급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크리스타 데구치에게 반칙패 했다.
일본계 캐나다 대표인 데구치는 세게 랭킹 1위로 세계선수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강호다. 하지만 허미미는 지난 5월 세계선수권에서는 데구치를 꺾고 우승했었다.
허미미는 이날 올림픽 경기에서 데구치와 밀고 밀리는 경기를 벌였지만 0-0 승부를 내지 못하고 ‘골든 스코어’로 들어섰다.
연장 시작 후 두 선수는 지도 2장을 받았고, 허미미는 2분 35초 만에 지도를 한 개 더 받아 반칙패 했다.
앞서 허미미는 8강에서 3전 전패했던 ‘천적’인 몽골의 엥흐릴렌 라그바토구를 절반승으로 물리쳤고, 이어 4강전에선 브라질의 하파엘라 시우바에게 누르기 절반승 했다.
허미미는 지난 2002년 한국 국적 아버지와 일본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 처음 도복을 입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일본 중학유도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기대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던 할머니가 생전에 “손녀 미미가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겨 이를 따랐다.
허미미는 이어 경북체육회에 입단했고 2022년 2월 대표 선발전에서 한국 대표선수가 됐다. 지난해에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됐다.
여동생 허미오(20)도 경북체육회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허미미는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군위군에서 항일 격문을 붙여 일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허석(1857~1920년) 선생의 5대손인 것으로 확인됐다. 허 선 생은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만기 출옥 후 사흘 만에 별세했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허미미가 독립 운동가의 5대손임을 밝혀낸 사람은 허미미를 한국에 데려온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이다.
특별한 것은 재일교포 3세 안창림 경북체육회 코치가 허미미를 지도하고 있다. 안 코치는 일본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대표로 동메달을 땄다.
그는 “허미미는 긍정적이다. 오만함 자체가 없다”고 칭찬했다.
허미미는 한국 대표가 된 이후 첫 국제대회였던 조지아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5월 아부다비 세계선수권 여자 57kg급 결승전에서는 이번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은 데구치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 여자 유도가 세계선수권에서 29년 만에 거둔 우승이었다.
1992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72kg급에서 우승한 김미정 감독은 “기술이 좋은 일본 유도에 체력을 강조하는 한국 유도 틀이 더해져 기량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현재 일본의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재학 중이다. 유도 학교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택했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금메달 딸 경우를 생각해 애국가까지 다 외워뒀거든요".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