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경상도 사람도 헷갈리는 갱상도 말] '쪼우다'가 뜻깊은 '디비쪼우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4.11.07 19:30 | 최종 수정 2024.11.09 13:48 의견 0

더경남뉴스가 경상 주민들이 자주 쓰는 사투리들의 길라잡이 방을 마련했습니다. 일상에서 말을 하면서도 뜻을 모르거나 제대로 대별이 되지 않는 사투리의 의미를 톺아내 소개합니다. "아하! 유레카!(알았다!)"라며 감탄할만한 낱말들을 찾아내겠습니다. 문장 중간엔 간간이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도 사용해 글의 분위기도 돋우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미국 사람들, 디비쪼우네"

6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졌다는 속보에 기자 옆에 있던 지인이 트럼프 후보가 자주하던 '막말'을 지적하며, 전 세계에 '상식의 기준'이 무너져가는 상황인 것 같다며 한 말입니다.

기자는 '디비쪼운다'란 말을 무척 간만(오랜만)에 들었습니다. 경남에서만 쓰는 사투리였는데 요즘은 반나절 생활권인 부산, 대구 등에서도 어렵잖게 듣습니다. '디비쫀다'로 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니는 디비쪼우는데 선수다", "니는 맨날 일을 디비쪼우나" 등으로 쓰이지요.

이들 말은 '일의 앞뒤를 뒤집다'거나 '반대로 하다', '순서와 순리에 역행하다' 등 일의 순서가 잘못됐거나 엉뚱한 일을 할 때 합니다.

사투리 '디비'는 '거꾸로'란 뜻인데, '쪼운다'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복잡합니다. '쪼은다'도 발음상 달리 들리지, 같은 단어로 봐도 되겠습니다.

이들 말이 사투리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표준어의 기준에 따라 분석을 해봅니다.

'쪼운다(조운다)'의 기본형은 '쪼우다(조우다)'이겠지요. '쪼은다(조은다)'의 기본형 '쪼으다(조으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음(된소리) '쪼'는 경상도 말이 강하고 억세기 때문에 나오는 발음입니다.

사투리 '조우다(조으다)'의 표준말은 '조이다'입니다.

기본형 '조이다'의 활용형은 '조여'이고, 준말 '죄다'의 활용형은 '죄어'나 '좨'입니다.

'조이다(죄다)'의 뜻을 찾아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보았습니다.

(1) 느슨하거나 헐거운 것을 비틀거나 잡아당겨서 단단하거나 팽팽하게 하다(나사를 꽉 조여라) (2) 차지하는 자리나 공간을 좁히다(자리를 빈틈없이 바짝 조여 앉아라) (3) 긴장하거나 마음을 졸이다(입술이 바짝바짝 타면서 가슴이 조인다) (4) 화투판 노름 등에서 마음을 졸이며 패를 젖혀서 보다(긴장해 화투를 바짝 조이는 손) (5) 목, 손목을 힘으로 압박하다(그 사내가 내 목을 조였다) 등입니다.

이해를 더 돕기 위해 경남의 경음 사투리(쪼이다) 용례로 살펴보면 (1)은 "나사를 매(매우) 쪼아라" (2)는 "서 있는 사람도 안거로(앉게) 자리 간격을 바짝 쪼여라" (3)은 "마음이 쪼여(쫄여) 눈 뜨곤 못 보겠더라" (4)는 "이번 판엔 38광땡 나오도록 잘 쪼아봐라" (5)는 "그 사람이 목을 막 쪼이는데 죽겠더라"가 있습니다.

또 자주 쓰는 사투리인 "이번 시험 땐 열심히 쪼아야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뜻인데 (1)~(5)에 맟춰넣기가 마땅치 않네요. 긴장해 공부한다는 뜻에서 (3)에 해당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땐 '열심히=긴장'이 성립되겠지요.

그런데 사투리 '쪼이다'의 뜻에 '열심히 하다'란 뜻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열심히 쪼아야지"는 '열심히 공부해야지'란 뜻을 담고 있지요.

참고로 경남 지방에선 "조아라"고 발음하지 않고 "쪼아라"라고 합니다. 따라서 "열심이 조아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 말고도 사투리 '쪼우다(쪼으다)'에는 '무턱대고 조르다'거나 '막무가내로 우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용례로는 "자꾸 쪼우지(우기지) 마라"가 많이 씁니다.

여기서의 쪼우다는 '(5) 목, 손목을 힘으로 압박하다'에 해당될 것 같지만 신체적인 부분으로 풀이가 다릅니다.

또 사투리 '쪼이다'의 뜻은 표준말인 '뾰족한 끝으로 쳐서 찍다'는 뜻인 '쪼다'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경남 사투리는 '찍는다'의 의미의 말을 "쪼아라"로 하기보단 주로 "쫏아라(쪼사라)"로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조르다'란 낱말에도 '조이다'와 비슷한 의미가 있습니다.

'동이거나 감은 것을 단단히 죄다(매다)', '사진기의 조리개를 조절해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좁게 하다(죄다)'가 있지요. "줄로 목을 조르다"가 용례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차지고(까다롭고) 끈덕지게 무엇을 자꾸 요구하다'란 뜻입니다. 떼쓰다, 보채다, 간청하다 등으로 씁니다.

평상시 별 생각없이 쓰던 사투리 '조우다(조으다)'-'쪼우다(쪼으다)'에 이런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기사 내용 중에서 혼동이 덜 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만, 이들 단어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지는 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혹여 독자들께서 이 글에서 틀렸거나 빼고 더해야 할 것이 있다면 조언을 주면 고맙겠습니다. 사투리 영역에선 표준어처럼 정확히 구분해 분석하기 쉽진 않네요. 사투리 연구가 덜 돼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