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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추접스럽다'는 말이 사투리야? 표준말이야?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5.26 16:34 | 최종 수정 2024.05.27 09:35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헷갈리는 낱말과 문구를 찾아 독자와 함께 풀어보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편달과 함께 좋은 사례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25일자 한 신문의 '피의자 수행하듯 따라 나선 전직 검찰 2인자의 처신'이란 제목의 사설에 한 네티즌이 '돈을 얼마나 받기로 했기에 참 추접스러워 보인다'는 댓글을 달았더군요.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의 변호인을 두고 한 말인데, 김 씨가 24일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올 때 동행한 조남관 변호사입니다.

그는 2020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직무정지 됐을 때 대검 차장검사여서 총장 직무 대행을 했었지요.

아마 이 댓글을 단 네티즌은 검찰총장 직대까지 했던 양반이 '비리와 거짓, 은폐 세트' 혐의를 받는 김 씨를 마치 수행하듯 바짝 붙어 출석한 것을 비아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자도 이를 참 의외의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돈이 저렇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변호사 직업이 갖은 변호를 해서 돈 버는 직업인데 무슨 대수냐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겠습니다.

추접하다는 '누추하고 더럽고 지저분한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표준말입니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추접스럽다도 같은 뜻으로 씁니다.

이 단어가 진주 지역을 비롯한 부울경에서 워낙 많이 쓰는지라 많은 분들이 사투리로 지레짐작을 합니다. 표준말임에도 유독 경상도 분들이 많이 하는 말입니다.

보통 듣는 말은 "추접은 짓 좀 고마해라", "추접하게(추접스럽게) 놀지 마라" 등입니다.

추접하다의 어근인 추접의 추는 한자 추할 추(醜)를 씁니다. '추'와 '접'이 만나 것이지요.

'추(醜)접스럽다'의 부사인 추접스레는 '거칠고 막되어 조촐한 맛이 없는 데가 있게'로 뜻은 대동소이합니다.

또 자주 쓰지 않지만 같은 뜻의 '추(醜)접지근하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추접'이 순수한 한글인 줄 압니다. 우리말에 이처럼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조합은 두루 쓰는 공용어로 자리잡기 전엔 '표준말 범주'에 들지 않다가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표준말이 된 경우일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추접은 짓들을 많이 합니다. 정석이 아닌 편법이 난무하고 불법도 당연한 듯 능청스레 합니다. 도가 더 심해져 추접 정도는 이제 '사는데 갖춰야 할 기본상식'으로 통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여의도 문법'으로 사는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범법자랍니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참으로 아이러니(역설적)합니다.

저런 자들이 국회로 가서 법을 만들고 고치면서 풋풋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옭아매는 세상입니다. 낙담을 더하는 것은 저런 자들을 표로 뽑아주는 우리의 자화상이겠지요.

우리가 먼저 부끄러워해야 겠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추접'을 '사람 사는 세상'과 연관시켜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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