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우리말 산책] 우리는 맨날 '이르다'를 '빠르다'로 잘못 쓴다···'빠르다'-'이르다' 구분법

정기홍 기자 승인 2024.11.04 13:57 | 최종 수정 2024.11.04 21:25 의견 0

'진주시 진성면의 들녁에 빠른 추수로 볏짚을 압축한 곤포사일리지가 모여 있는 모습'

더경남뉴스의 한 기자가 사진설명에서 '빠른 추수로'라는 문구를 썼습니다.

'빠른 추수로'일까요? '이른 추수로'일까요?

'이른 추수로'가 맞는 표현입니다. 이 말고 '일찍한 추수로'로 쓰는 것도 맞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봅니다. 일반인의 십중팔구는 구별을 쉽게 못합니다.

이 두 낱말의 '구별 난도(難度·어려움의 정도)는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틀리다'-'다르다'와 차원이 많이 다릅니다. 방송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일상에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많이 씁니다. 예컨대 '그건 내 것과 달라'를 '그건 내 것과 틀려'라고 잘못쓰지요.

'빠르다''동작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뜻입니다. '속도'의 의미를 가졌지요.

비슷해 보이지만 사전의 구별을 하면 ▲동작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예 '걸음이 빠르다') ▲일이 이뤄지는 과정이나 기간이 짧다(예 '두뇌 회전이 빠르다') ▲기준이나 비교 대상보다 시간 순서가 앞선 상태에 있다(예 '나보다 생일이 빠르다') 등입니다

빠르다의 비슷한 말로는 날래다, 날쌔다, 급하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이르다''계획한 때보다 앞서다'는 뜻입니다. 빠르다처럼 '속도'가 아니라 '시기'와 '때'와 관계가 있지요. '일찍'으로도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비교의 개념'입니다.

더 세분해 보면 '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예 '가려던 목적지에 이르다'), '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예 '결론에 이르다') 등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은 닿다, 들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때나 시기보다 앞서거나 앞서 행하는 것은 '빠르다'가 아닌 '이르다'나 '일찍'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는 어제보다 이르게(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김장 담그기가 이른(일찍 한) 감이 있다' 등이 용례입니다.

다시금 두 낱말의 용례를 놓고 비교해봅니다.

'올해는 단풍이 작년보다 빨리 물들었네'(틀림)→'올해는 단풍이 작년보다 이르게(일찍) 물들었네'(맞음), '내가 가장 빨리 도착했어'→'내가 가장 이르게(일찍) 도착했어'(맞음), '빠른 시간부터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이른 시간부터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 '아이에게 영어교육을 너무 빨리 시키는 게 아닐까'(틀림)→'아이에게 영어교육을 너무 이르게(일찍) 시키는 게 아닐까'(맞음) 등입니다.

정리하면 ▲'빠르다'는 움직이는 속도가 보통 정도보다 큰 것을 뜻하고 ▲'이르다'는 어떤 시각이 정해진 시각보다 앞선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빠르다'는 '절대적인 운동'의 개념이고, '이르다'는 '상대적인 순서'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것을 주입해보면 보다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빠르다'의 반대는 '느리다'입니다. '이르다'의 반대는 '늦다'입니다.

'걸음이 빠르다'에 이르다를 넣어 봅니다. '걸음이 이르다'? 이상합니다. 금방 틀렸음을 알 수 있지요.

반대로 '목적지에 이르다'에 빠르다를 넣으면 '목적지에 빠르다'입니다. 생뚱맞습니다. 틀렸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다른 혼동되는 사례에서도 이 방법으로 비교하면 보다 쉽게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르다'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빠르다'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틀린 것을 모르고 지나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다르다-틀리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