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농촌은 지금] "입동 절기에 아즉 나락 수확 못했심더"

정창현 기자 승인 2024.11.12 12:34 | 최종 수정 2024.11.12 17:59 의견 0

"저 허여이(하얗게-실젠 누렇게) 나락 서 있는 거 안 보임니꺼, 논이 질어 기계를 넣을 수가 없심더"

경남 진주시 사봉면 한 마을이장은 벼가 서 있는 들판을 찾은 기자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 절기인데 경남 진주시 동부 지역 들판엔 수확을 하지 못한 벼(중만생종)가 제법 들판에 서 있다. 올해는 수확기에 벼멸구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는 수확을 빨리 할 것을 독려했고, 벼 재배농가들도 서둘러 수확에 나서 일모작의 경우는 예년보다 일찍 추수를 마쳤다.

12일 진주 동부지역 농업인들에 따르면 들판이 넓은 사봉, 반성, 진성, 지수 등의 일부 농가는 아직도 벼 수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이날 찾은 사봉면 들판엔 누렇거나 햐얗게 보이는 벼가 들판 곳곳에 서 있었다.

진주시 사봉면 들판 곳곳엔 아직 벼를 수확하지 못한 논들이 보인다.

입동 절기는 가을걷이, 특히 벼 수확을 다 끝내고 겨울 채비를 하는 절기다.

벼 수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이상 날씨다. 올해는 유난했던 늦더위에다 불과 10일 전만 해도 가을비가 계속됐다. 추수철에 비가 잦고 많이 내려 물이 논바닥에 고이고, 논바닥이 지금껏 마르지 않고 있다. 이들 논은 평소 물빠짐이 좋지 않은 진(질척한) 곳들이다.

두 번째는 비가 잦아지면서 콤바인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수확 시기를 놓쳤다. 예년에 비해 마을 대농가의 콤바인 작업 의뢰가 쉽지 않았다. 진주시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는 콤바인이 비치돼 있지 않다.

세 번째는 겨우내 먹일 소 사료와 관련돼 있다. 이도 날씨와 연관된다.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벼는 중만생종인데, 보통 모내기 후 55~60일이 지나면 이삭이 패고 10월 중순이면 벼가 익는다. 따라서 중만생종 수확 적기는 지난달 말까지다. 하지만 비가 자주 내려 탈곡을 미룰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콤바인 탈곡은 논이 질어도 가능하지만 볏짚을 물이 많은 논에 오래 두면 썩는다. 따라서 볏짚을 썩이지 않고 팔기 위해 벼를 베지 않는다.

이성태 경남도농업기술원 연구관은 "콤바인 바퀴가 궤도여서 일모작의 경우 어지간한 진흙탕이 아니면 수확을 할 수 있었다"며 "중만생종 벼를 베지 못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비 때문이지만 곤포사일리지(일명 마시멜로·공룡알)를 적당한 시기에 팔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곤포사일리지는 올해 4만~5만 원선에서 거래된다.

진성면 한 농업인은 "벼 수확 후 논에 흩어져 있는 볏짚은 트랙터에 단 베일러로 말아 곤포사일리지를 만든다. 하지만 바퀴가 궤도인 콤바인과 달리 트랙터는 바퀴가 커 논이 질면 바퀴가 빠져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며 "볏짚의 용도를 생각하면서 수확을 늦추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 번째론 이들 벼논의 대부분은 모를 낼 때 농협과 계약재배를 해 늦어도 벼를 언제나 가져가도 수매를 해주기 때문이다. 곤포사일리지를 파는 시점과 맞물리고 벼 농사 말고 다른 농삿일이 있어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섯 번째론 지속적인 쌀값 하락에다 올해 유달리 창궐했던 벼멸구 피해로 벼 품질마저 좋지 않아 벼 적기 수확 의욕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농심의 낙담이 적당한 벼 수확 시기가 더 크다는 말이다.

벼 수확을 하지 못한 사봉면 마성리 들판. 익은 벼가 그대로 서 있는 논 옆의 수확한 논엔 벼 그루터기에 물이 고여 있다.

이러다 보니 이날 찾은 사봉 들녁엔 벼를 수확한 뒤 논에 두었던 축산 사료용 볏짚이 그대로 논에 널려 있었다. 또 베일러가 말아 놓은 곤포사일리지도 그대로 방치돼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수확한 논 곳곳에 베일러가 소 사료용으로 말아 놓은 곤포사일리지(마시멜로)가 방치돼 있다. 이 농가는 논바닥이 질어 옮기지 못한다고 했다.

따라서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들로선 애가 탈만도 하지만 큰 걱정을 하진 않는 듯했다.

지난 8일 수확에 나섰다는 사봉면의 한 농업인은 "해마다 늦게 수확하는 농가는 농협과 계약재배를 해 언제든지 벼를 수매할 수 있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수확을 빨리 해야 하는데 논에 물이 많아 수확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들판이 넓은 사봉과 지수, 반성엔 골짝 논과 달리 이모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예년에도 조사료 등을 수확한 뒤 모를 심기에 모내기 자체가 늦고 수확도 늦는 편이다.

이런 여건에 올핸 벼 수확기에 비마저 잦아 더 늦어졌다.

벼가 서 있는 질퍽한 논은 물빠짐 골을 내지 않아 콤바인 작업을 허락하지 않고, 논에 흩어져 있는 볏짚은 트랙터가 모을 엄두를 못낸다.

10일 전에 내린 폭우로 누렇게 서 있는 벼논 옆엔 물이 많이 고여 있다.

지수면 이 모(70대) 씨는 "지수쪽 농가들은 이모작을 하는 곳이 많아 추수가 늦은 편이지만 지금은 가을비가 잦아 땅이 물이 차 있어 수확을 못 하는 것"이라며 "우리 동네도 수확을 못한 농가가 많다"고 전했다.

진주시 동부 지역엔 10월 하순에 제법 비가 많았다. 시간 당 폭우가 20~30mm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논바닥이 마르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당장 기온이 떨어져 서리가 내리면 벼(쌀) 품질이 떨어져 제값을 못 받을 우려가 크다. 최근 진주 아침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갔다.

진성면 벼 재배 농업인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락을 다 베야 한다"며 "올해만큼 비가 많이 와 애를 먹은 적은 없었지 싶다"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모내기를 한 시기에 따라 중만생종은 지난 8월 15일~30일 이삭이 팬다. 따라서 수확은 10월 15~30일쯤 하는 게 좋다"며 "늦게 베면 벼가 더 건조돼 도정을 했을 때 타원형이 낱알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져 품질이 좋지 않아 밥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올해 벼 수확량과 벼 도정률이 평년보다 많이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는 등숙기(登熟期·볏과 식물의 곡실이 여무는 시기)에 등숙 불량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지난해보다 10% 정도 수확량이 준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벼 생산량은 지난해 총생산량 395만t보다 39만여t이 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올해는 벼 작황 불량으로 평년 도정수율 72~73%보다 낮은 70%로 2.3% 정도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정수율이란 투입된 벼 무게에 비해 도정된 백미의 백분률(%)을 나타내는 용어다.

최근 벼 시세는 80kg 기준(상품)으로 지난 10월 15일 18만~18만 5천 원으로 지난해(20만 원)에 비해 13% 떨어져 있지만 최근 조금 올라 지난해에 비해 5% 정도 내린 상태다.

이 연구관은 "이번 주 금요일 통계청에서 관련 수치가 나오는데 조금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연말이면 쌀값이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사진

이상 정창현 기자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