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경상 주민들이 자주 쓰는 사투리들의 길라잡이 방을 마련했습니다. 일상에서 말을 하면서도 뜻을 모르거나 제대로 대별이 되지 않는 사투리의 의미를 톺아내 소개합니다. "아하! 유레카!(알았다!)"라며 감탄할만한 낱말들을 찾아내겠습니다. 문장 중간엔 간간이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도 사용해 글의 분위기도 돋우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갸는 평소 남을 잘 속인다. 그리 기시가 될 끼가"
설날 차례상을 물리고, 오랜만에 모인 친족이 새해 덕담을 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자리에선 "대체 '기시'가 무슨 말이고? 아프리카 피그미 원주민 말도 아이고···"라는 말도 나왔다.
기자는 '기시다'를 '속이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맞았다.
뜻을 정확히 알고 싶어 찾아봤더니 '속이다'의 사투리라고 해석하고 있다. '속이다'는 속다의 사동사로 '거짓이나 꾀에 넘어가게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또 다른 '기시다' 말이 나왔다.
"그 사람들, 저들끼리 해묵을라꼬 평소 안 알려주고 잘 기신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기자는 앞의 '기신다'와 달리 이 말에선 '숨긴다'로 이해했다.
평소 '기시다'란 말을 가끔 들었지만, '속이다'와 '숨기다'를 모두 함의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이날 한 자리에서 두 사례 말을 들으면서 '기시다'에 두 개의 전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사투리는 대체로 표준어 뜻을 정확하게 적시하지 못한다.
많은 사투리가 표준말이 갖는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몇 개의 뜻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다른 지역의 사투리와 달리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슬한 편이다. 즉, 경상도 말은 표준어나 사투리에서나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기시다'는 전라도에서도 쓰는 모양이다. "넘(남) 기실라고 참 애쓰요"라는 사례처럼 쓴다고 한다. 여기에선 '속이다'라는 뜻이다.
이를 보면 대체로 '기시다'는 표준말 '속이다'의 뜻으로 보는 듯하다. '숨기다'는 뜻으로 해석한 곳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자리에서 화자(話者·말 하는 사람)가 사례를 잘못 썼을 수 있지만, 현장에선 분명 '속이다' 말고 '숨기다'의 뜻으로도 소통을 하고 있다. 발언상으로 '숨기다'가 일면 더 와닿는다.
사투리 '기시다'는 중노년층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다. 사용자가 소수여서 듣기 어려운 귀한 사투리다.
앞으로도 사어(死語·죽은 말)가 되지 않게끔 잘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문학계에서 '기시다'란 사투리의 해석을 더 확장해 들여다볼 이유도 있어보인다.
참고로 사투리 '기시다'는 다른 뜻도 있다.
'계시다'이다.
경남의 진주, 의령, 하동, 창녕, 양산과 울산, 강원, 전북에서 쓴다고 한다.
"자네 아부지(아버지) 집에 기신가?", "나으리가 기신 모양 아니가?"(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