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경상 주민들이 자주 쓰는 사투리들의 길라잡이 방을 마련했습니다. 일상에서 말을 하면서도 뜻을 모르거나 제대로 대별이 되지 않는 사투리의 의미를 톺아내 소개합니다. "아하! 유레카!(알았다!)"라며 감탄할만한 낱말들을 찾아내겠습니다. 문장 중간엔 간간이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도 사용해 글의 분위기도 돋우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이번 회엔 경상 지역에서 자주 사용해 사투리처럼 느껴지는 표준말을 소개합니다.
'걸다'인데, 뜻이 무척 많습니다. 또한 사투리로 혼돈되는 말이지요.
걸다는 '매달아 놓다', '빗장을 지르다', '솥을 올려놓다', '시비 등을 따지다' 등은 물론 '음식 등의 가짓수가 많고 푸짐하다'(음식을 걸게 장만했네)거나 '거리낌이 없고 푸지다'(입이 걸어 욕을 잘한다) 등 다양합니다.
또한 '말을 걸다(하다)', '전화를 걸다(하다)'처럼 어법엔 맞지 않는 문구도 일상에서 무리없이 사용합니다. 말이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이고 전화는 '전화기를 이용해 말을 주고받는 것'이어서 '하다'가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강원 동해안에서 잡은 고기와 해산물을 넣은 탕이 걸게(푸짐하게) 보인다. KBS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 중 한 장면.
"아따, 걸다"
KBS의 '동네 한바퀴' 프로그램에서 음식점에 차려진 음식을 보던 지인이 뱉은 말입니다. 진주 지방에서 많이 써 참 아름다운 사투리라고 생각했는데 표준말이더군요. 요즘도 중년 이상의 분들이 자주 사용합니다.
표준어-사투리를 차치하고, '걸다'를 음식에 한정하면 '음식 등의 가짓수가 많고 푸짐하다'는 뜻입니다.
자주 쓰는 용례는 ▲잔칫상이 걸다 ▲칠순잔치에 음식을 걸게 장만했더라 ▲그 식당은 반찬이 걸게 나온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경남 하동 들녘 평사리를 배경으로 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도 '걸다'란 말이 나옵니다. '나 김 훈장 댁에 갔다가 이팽이 너의 집에 갈 것이니 술이랑 밥이랑 걸게 차려 놓고, 알겠나?'
박경리 작가는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했는데, 소설 '토지'에는 구수한 서부경남 사투리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참고로 같은 진주(진양) 출신인 정동주 작가의 대하역사소설 '백정'도 읽노라면 사투리 사전을 옆에 끼고 책장을 넘겨야 할 정도로 서부경남 사투리가 지천입니다.
이처럼 사투리로 오인할 정도로 서부경남에서 많이 쓰는데 '진주 지역 사투리' 표현(단어)이 없습니다. 생활 깊숙이 표준말을 사투리처럼 능청스럽게 사용하는 것이지요.
발음, 즉 말투(억양)에서나마 경남 사투리로 변형될 수 있을 법한데도 없습니다. 걸다란 단어의 발음에 사투리 발음과 억양이 개입될 소지가 없다는 의미이겠지요.
전국적으로 봐도 걸다의 지역별 사투리가 거의 없습니다. 강원도와 황해도에서 '글다'로 쓰는 정도입니다. 충청도에선 걸다를 '지름하다', '지룩하다'라고 쓴다는데 걸다와 연결지어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 단어를 소개한 동기가 음식이었으니 음식과 관련한 '걸다'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기름지다', '많다', '배부르다'의 뜻으로 대별(大別·크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흙이나 거름 등이 기름지고 양분이 많다'(땅이 원체 걸어서 곡식이 잘 자랐다), '차려 놓은 음식의 가짓수가 많고 푸짐하다'(그 식당엔 반찬이 푸짐하다), '액체 등에 내용물이 많고 진하다'(국물 거네), '푸짐해 배부르고 흡족하다'(한판 걸게 먹었다) 등이 있습니다.
꼭 음식이 아니지만 '걸다'가 음식과 연관성이 있는 '거리낌이 없고 푸지다'(그 사람 입이 걸어 욕을 잘한다), '손으로 하는 일 솜씨가 좋다'(묽지 않고 톡톡하다) 등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