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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유레카!] 부처님오신날 '절밥'에 담긴 정신과 유래

정기홍 기자 승인 2022.05.08 08:52 | 최종 수정 2022.05.09 15:54 의견 0

오늘(8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기자는 전날부터 오랜만에 산사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산을 찾아 운동도 할 겸 절밥도 먹고 싶었다. 요즘 절간은 구경도 구경이지만 어지러운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 곳으로도 단연 인기다.


절밥 이미지

기자는 이날 오전, 집 근처의 사찰에서 절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전화를 넣었다.

"오늘 가면 절밥을 먹을 수 있나요?"(기자) "예, 오전 10시30분부터 줍니다"(사찰 관계자)

"공짜인가요? 돈을 내나요?"(기자) "공짜로 드립니다. 다만 언제 공양이 끝날지 모릅니다"(사찰 관계자)

사찰 관계자의 말처럼 사찰의 명절인 오늘 절에 가면 공짜로 절밥을 먹을 수 있다. 주는 절밥이 부담스럽다면 일정액을 시주 해도 된다.

위에서 말한 공양(供養)이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망자의 영혼에게 음식이나 꽃을 바치는 일 또는 음식을 이른다. 일반인으로선 '절에서 주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편하다. 보통 제철 봄나물이 듬뿍 든 비빔밥을 내놓는다.

요즘 절밥은 찾아먹기 힘들 만큼,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큰 인기다. 건강식의 별미이자 백미로 인식돼 최고의 음식으로 친다.

기자는 수십년 전에 강화도 전등사에서 5월의 나무숲 아래에 걸터앉아 비빔밥을 참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딱 한번 먹었는데 그 맛의 여운이 오랜 세월을 지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절밥은 돈을 받지 않거나 1000~2000원 정도의 공양을 하면 먹을 수 있다. 큰 절은 신도들이 찾는 평상시와 달리 무료공양은 하지 않고 식권을 파는데도 있다. 준비에 품이 엄청 들어 그렇다지만 상술이 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조계사 앞 건물 지하엔 3000원으로 사찰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만발공양간’이 있다. 낮 12시~1시에 먹을 수 있다.

식당 이름은 ‘만발공양’에서 비롯됐다. 만발공양은 승려들이 공양할 때 쓰는 바릿대(발)에 음식을 꽉 채워(만) 나눠 먹는다(공양)는 뜻이다. 즉 절 행사가 끝난 뒤 밥을 수북히 담아 사람들에게 베푸는 음식이란 뜻이다.

조계사는 오랫동안 무료 배식을 하다가 1000원에 이어 지금은 3000원을 받는다. 적자가 지속 되지만 매일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나와 음식과 밑반찬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해주고 있어 버틴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부처님오신날에 무료로 절밥을 내놓는데 메뉴는 비빔밥이다. 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등 5가지 나물을 넣는다. 시래기 된장국과 절편도 나온다.

부처님오신날의 절밥은 신자 등 사람이 제일 많이 찾는 사시공양예불 때 내놓는다. 사시예불은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부처에게 마지(摩旨)를 올리는 헌공 의식이다.

참고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食寺洞)이란 곳이 있는데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이 절밥을 얻어 먹으며 피신 생활을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식사 지명은 밥 식(食)자에 절 사(寺)자를 쓴다.

절밥은 현대인에게 어떤 찬미(讚美)를 해도 부족하다.

고기와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만드는 과정도 수행의 방법으로 여겨 정갈하다. 간단하고 소박한 재료를 쓰지만 자연의 풍미가 깃든 맛이다. 향이 지나친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달래·부추·흥거)를 넣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영양이 우수하다.

매운 고추가 오신채에서 빠진 이유는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지만 오신채보다 그 양기가 덜하기 때문이다. 오신채는 양기를 돋워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음식으로 친다.

아시아 북방불교권(한국·중국·일본·티베트 등)에서는 절(사원)이 발달하면서 스님들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음식이 개발됐고 절밥은 그 원형이다. 스님들은 평소 매작과(梅雀菓·약과)나 버섯잡채, 순나물, 칼국수 등 단촐한 음식을 먹는다. 차도 곁들인다.

이 가운데 두부나 김치, 나물을 한데 비벼서 만든 비빔밥은 일반인이 맛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절밥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절밥에 고기를 허용하지 않지만 태국이나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네팔, 티베트, 몽골 등 남방불교와 일본에서는 육식을 허용하고 있다.

남방 지역이 나물 등 식물 반찬이 많지 않아 육식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문화권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남방 지역에서는 주로 탁발(음식을 얻어 먹음)한 음식으로 공양을 해 사찰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전까지 육식을 금했지만 지금은 정진할 때 먹는 요리로 보신 요리인 장어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육식이 발달한 원나라의 스님이 고려를 방문해 육식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육식과 관련해 석가모니도 탁발을 하는 중에 육식이 들어오면 허용했다고 한다. 다만 살생을 해 얻은 고기는 정육(淨肉·불제자에게 특별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 고기)이 아니어서 거부했다. 아플 때는 오히려 정육을 권장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육식을 금한 것은 고행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란 견해도 있다. 석가모니가 살던 당시의 인도에서는 고행하는 사람들이 존경받고 인정을 받았다.

주마간산 식이었지만 절밥에 관한 기본 지식을 짚어보았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이날 산사를 찾아 비빔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부처님의 가피(加被·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를 생각하는 것도 뜻있는 하루를 보내는 일일 듯 싶다. 5월의 절간은 먼길을 찾아 온 길손들에게 싱그러움 등 많은 것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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