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경상국립대 출신 안서경 시인, '유독 그곳만 환한 볕마루,' 발간
첫 시집 이후?28년 만,?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시인의 일상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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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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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국립대(GNU)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안서경 시인이 28년 만에 시집 '유독 그곳만 환한 볕마루,'를 냈다.
안서경 시인은 1986년 '시문학'지에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MBC 구성작가로 활동했으며 장기간 미국 뉴저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거주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저녁'(1994년)이 있다.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경기시인협회 회원이다.
시집에는 시 76편이 4갈래로 나뉘어 실려 있다. 안서경 시인은 “볕마루에 앉고 싶다”라고 말한다. 머리말에서 시인은 “오래된 볕마루가 있었다"면서 “오랫동안 밖을 떠돌다 결국 돌아와 찾은 것이 저 찰나의 환한 볕마루가 아니었나, 한번쯤 온전히 갇혀보고 싶었던 내 생의 간절한 볕마루는 무엇이었을까”라고 스스로 묻는다.
시집의 발문을 쓴 박동규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만의 오래고 소중한 ‘볕마루’는 긴장의 이미지이다. 이 긴장은 공간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하여 시를 발아하는 자리가 되리란 것을 보여준다. ‘숙제가 많이 늦어버린 아이처럼’ 하지만 그를 ‘기다려준 시’에게 넉넉 보답해 가라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풀어준다.
그의 시 ‘이현동’은 시인이 대학 시절 살았던 진주시 이현동의 풍경으로 읽힌다.
‘풀죽은 달맞이꽃/ 강을 바라 서 있다’는 대목에서는 이현동 나불천변에 선 젊은 시인을 연상하게 한다.
시 ‘저문 진양호에 비’에서는 ‘정작 떠나고 싶은 시간/ 호수는 그어 누빈 어둠 한 채 펴고/ 그만 잠들려 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던 젊은 날의 추억일까 하지만 시 ‘다시 진양호에서’는 첫 연 ‘모두들 떠났었구나, 인연의 깊은 그늘 속으로’에서 우리는 시인도 떠난 사람의 한 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진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을 떠나 미국에서 15년가량 살고 돌아온 시인에게 고향은 이렇듯 떠나고 싶을 때는 떠날 수 없다가 정작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박동규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혼돈과 쓸쓸함의 흔적을 나타내 보이는 ‘모른다’, ‘마음 속에 집을 짓고’나 한 잎의 자아와 자유에의 목마름을 노래한 ‘가을 속으로’, ‘월밍턴 비치에서’나, 정체성을 찾아나선 새로운 삶의 추적이라고 할 ‘비 갠 뒤’, ‘곶감이 익는 시간’, ‘살구꽃 핀다’ 등의 시들에서 시인의 시적 편력을 엿볼 수 있다.
‘우수 무렵’은 경기 양평에 정착한 후 ‘응어리진 돌은 파내고 포슬포슬 흙을 고르며’ 그의 마음밭에도 시를 짓는 경작이 시작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이를 박동규 교수는 “항상 그가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게 하는 시에 대한 집념이 이제야 안착해 선인장의 꽃처럼 늦게 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시인은 말한다. “먼 길 돌아 다시 한 뼘 볕마루에 올라 해가 져가도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리고 싶다. 절로 뭉툭해진 기둥에 기대어 발 까딱거리며 졸다 깜박 잠이 들면 남은 볕이 따뜻하고도 부드럽게 감싸주고, 새들은 좀 더 오래 곁을 지켜줄 것이다. 그 기억들을 모아 이제는 시의 볕마루에 쪼그려 앉아 조금은 늦은 시를 적고 싶다”라고.
▶ 우수(雨水) 무렵
양평에 와서 밭을 일구고 살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한생애 시의 밭을 헤매며
언어를 줍고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밭을 일구는 일이 시의 오지에서
흩어진 낱알을 찾아내는 일 같아서
이 일이 그 일 같고 그 일이 이 일 같아
마침내 그 일이 그 일 같다
응어리진 돌은 파내도 포슬포슬 흙을 고르면
결국은 둘 다 서로를 토닥이는 일
때마침 첫 봄비다
비가 물이 되어 흐른다는 오늘이 우수雨水.
양평에 깃든 여자는
벌써부터 봄비의 우수憂愁에 젖어
묵은 마음밭의 돌들을 거두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