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세상에 맛있고, 착하고, 여유로운 가격도 있어야지"
중부 지방의 장마 물폭탄에, 남부의 찜통더위,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로서는 어느 것 하나, 어느 한 곳에서도 숨통을 트기가 힘든 요즘 홈플러스발 '반값 치킨'이 연일 화제다. 가성비가 대단하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역대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내놓은 한 마리 6990원짜리, 두 마리 9990원짜리 치킨이 연일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논쟁도 뜨겁다. 무엇보다 먹어본 소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당치킨은 '당일 튀겨서 당일 판다'는 의미로, 당당하다는 뜻도 담고 있다.
▶ '착한 치킨' 불붙인 홈플러스
홈플러스가 '가성비 좋은 착한 가격'으로 선공을 하자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가세했다.
'당당치킨'이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자 대형마트 3사가 한여름 열기 만큼이나 뜨겁게 '저가 치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한 마리에 6990원짜리 당당치킨이 인기를 끌자 두 마리에 9990원짜리 ‘두 마리 후라이드 치킨’을 판매했다. 이어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1만원 이하 치킨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착한 치킨 삼국지'가 형성됐다.
11일 홈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판매를 시작한 당당치킨은 이달 10일까지 32만 마리가 넘게 팔렸다. 1분에 약 5마리씩 판매된 셈이다.
당당치킨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검색량 폭증하고 있다. 포털에서 홈플러스 치킨을 치면 '나오는 시간' '가격' '할인 시간' 등이 뒤이어 바로 뜰 정도다.
7월 28일~8월 3일 1주일간 '홈플러스 치킨' 키워드 검색량이 전월 동기보다 1036% 증가했다. 지난 2~8일 당당치킨 키워드 검색 순위는 전체 키워드 중 1위였고, 검색량은 전주 대비 487%나 올랐다.
홈플러스는 말복인 오는 15일 하루만 당당치킨 후라이드를 5000마리 한정으로 1000원 싼 5990원에 판매한다. 고객 1인당 1마리만 구매할 수 있다.
이마트는 지난 달부터 “에어프라이어 190도로 5분만 돌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9980원짜리 ‘5분 치킨’을 판매 중이다. 에어프라이어는 '튀김요리 심폐소생기'라고 할만큼 데우면 튀김옷을 바삭하게 해준다.
12년 전 가성비 좋은 치킨을 처음 내놓았던 롯데마트도 11~17일 행사 카드로 결제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뉴 한통 가아아득 치킨’(한통치킨)을 기존 1만 5800원에서 8800원으로 44% 할인 판매한다.
▶ 대형마트 싼 이유는?
맛은 절대 프랜차이즈 치킨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이다. 많은 사람이 더 맛있다고 한다. 각 매장에서 바로 튀겨 곧바로 팔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육계를 대량 구매해 매입가를 낮추고 매장에서 직접 튀겨 마진을 최소화 해 판매하기에 가능한 가격”이라고 설명한다. 박리다매 전략이다.
홈플러스의 당당치킨 등 대형마트의 치킨은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에서 사용하는 10호 닭(1kg 기준)이 아닌 8~9호 닭(800~900g 기준)을 사용한다.
프랜차이즈 치킨업계 한 관계자는 “10호는 가장 육질이 좋고 한 마리 치킨 메뉴에 쓰는 보통 닭”이라고 말했다. 8~9호 닭은 10호보다 크기가 조금 작다.
또다른 이유는 미끼다. 싸고 맛있는 치킨으로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오게 해 다른 상품도 들러보고 생필품들을 사가라는 것이다.
홈플러스로서는 당당치킨으로 이마트나 롯데마트보다 다소 떨어지던 인지도를 단숨에 올리는 계기를 만들어 치킨 이벤트가 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연중 진행하는 물가안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치킨처럼 고객이 즐겨 찾는 먹거리를 엄선해 지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 3만원 외치던 프랜차이즈 바짝 긴장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본사들은 아직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3만원 치킨 시대'를 뱉어 놓은 입장에서 그에 못지 않은 맛을 지닌 6000원대 치킨이 대박을 치니 말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다만 현장의 가맹점 업주들은 “대형마트와 단순 비교는 불공평하다”며 볼멘소리다. 하지만 여론은 어림없다는 분위기다.
업주들은 “본사의 원부자재 값이 비싸고 배달앱 수수료까지 덤터기로 쓰고 있다”며 나아가 대형마트의 치킨 전쟁을 보면서 "본사의 폭리 행태는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치킨 소비자들의 심리 기저엔 그동안의 국내 치킨업계의 독과점 행태에 대한 반감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
60대 초반 정모 씨는 "그동안 치킨업계는 우리 국민들이 치킨에 좋아한다는 것을 빌미로 육계에서부터 독점과 과점으로 치킨 값을 좌지우지 해왔다"면서 "지난해엔 BBQ 대표가 치킨 3만원 시대를 말할 땐 거만함과 도도함마저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치킨 소비자들이 가격을 받아들이면서 먹은 게 아니라 불만이 쌓였음에도 참고 먹어왔는데 소비자 위에서 놀겠다는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며 이번 치킨 논쟁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따라서 지금의 치킨 가격이 비싸다는 원성은 가맹점에 불리한 유통구조로 과도한 마진을 가져가는 가맹본사가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소비자단체협의회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매출 상위 5개 브랜드(교촌치킨, BHC, 제네시스BBQ, 처갓집양념통닭, 굽네치킨)의 가맹본부 매출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매출은 굽네치킨(8.8%)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업체 가맹본부 모두 연평균 10% 이상씩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5개 업체 모두 5년간 연평균 12% 이상 증가했으며, BBQ의 경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연 33.8%나 늘어났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가맹점주들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라 본사에서 판매하는 원부자잿값이 높게 책정된 것이 치킨 가격의 상승 원인”이라며 “대형마트와 비교해 가맹점주들을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의 업주들은 대형마트의 치킨 전쟁이 가맹본사의 폭리를 저지할 기회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의 프랜차이즈 치킨 2만원 시대를 연 것은 가맹본부의 폭리 때문이라는 말이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 모(60대) 씨는 “대형마트가 보다 싼 가격에 치킨용 육계를 대량 수급한다고 한다"면서 "프랜차이즈 본사도 싸게 수급을 할수 있다는 면에서 유통 시스템에 손질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피해는 프랜차이즈 본사 아닌 매장으로?
프랜차이드 치킨 매장업주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픈런 현상'까지 나온 대형마트의 ‘치킨 전쟁’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프랜차이즈 업주는 “단돈 100원이 남아도 손해는 아니니까, 대형마트에서 '그래도 남는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라면서 "손님들이 자꾸 대형마트 치킨과 단순비교를 하니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맹점은 본사가 정한 유통 단계가 있어 한 마리당 몇백원을 남겨서는 매장 유지가 안 된다는 말이다. 닭고기, 밀가루, 식용유는 물론 포장상자, 호일까지 본사 제품을 써야 한다.
프랜차이즈 치킨 업주들은 본사에서 납품을 받는 원재료 가격도 폭등했다고 말한다.
한 가맹점 업주는 “식용유 한통이 6만 8000원 정도인데, 튀김기 1구 기준으로 1.8통 정도가 들어가고 최대 100마리를 튀긴다고 해도 산술적으로 기름값만 마리당 1156원”이라며 “육계 한 마리 5000원, 치킨 무, 포장 용기, 콜라 등을 합치면 최소 1500~2000원이라 대형마트와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건비, 카드수수료, 부가세, 월세에다가 배달앱 수수료도 3000~4000원씩을 물어야 한다”며 현실을 지적했다.
▶지금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 없다
대형마트의 치킨 논쟁에 대해 소비자들은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달 초 홈플러스에서 두마리 치킨을 사서 먹어봤다는 50대 최 모씨는 "3대 치킨 브랜드인 교촌치킨, BBH, BBQ보다 더 맛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주일에도 한두번은 치맥을 먹는 마니아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홈플러스는 그날 하루치 치킨 물량을 가져와 각 매장에서 튀겨 맛이 살아 있고,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져가는 중간유통 마진이 없다.
지금의 여론은 지난 2010년 롯데마트 '통큰치킨'으로 벌어졌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때와 전혀 다르다.
롯데마트는 당시 9호 닭으로 5000원짜리 ‘통큰치킨’을 선보였다가 골목상권 침해 비판 여론에 밀려 10일만에 판매를 중단했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치킨 본사가 이미 골목상권을 고가로 휘두르는 갑의 위치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해온 행태가 대기업과 다른 게 없고, 높은 치킨 가격을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고공행진 중인 외식 물가에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저가 치킨에 환호하고 있다.
최 씨는 "언론 등에서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맛이 덜하다고 하는데, 먹어본 상당수 지인들은 맛이 더 낫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치킨 소비 시장도 가격면에서 다양해져 밖에서 동료 지인과 함께 먹을 때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고, 집에서 혼자 먹을 때는 대형매장 치킨을 사먹는 등 취향과 여건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킨 시장은 '마트 초밥 맛'과 '횟집의 고급 초밥 맛'을 비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 정보 팁!
정부는 지난 2월 치솟는 외식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12개 주요 외식품목 가격을 주단위로 조사해 공개하면서 치킨과 김밥, 햄버거, 죽 등 4개를 관리품목으로 지정해 가격과 관련해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