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위에서 너무 자주 보거나 너무 쉽게 쓰는 것엔 무감각하거나 예사스럽게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천에 널려 있으면 귀한 줄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고(故)' 자가 그렇습니다.
지인이나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병원 영안실에 조문을 가면 입구의 조화 등에서 '고(故) 000 씨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자주 봅니다.
그냥, 의레 망자에게 붙이는 거라고만 생각하지 속뜻을 정확히 잘 모릅니다.
여기서의 '고(故)'는 죽은 사람의 이름 앞에 쓰여 '이미 세상을 떠난'의 의미를 가진 관형사입니다.
'고(故)'는 죽을 고입니다. 보통 '연고 고' '연유 고'라고 알고 있는 한자입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관련해 특별한 질문이 있어 소개합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뜻은 이해되는데 '고(故) 외할아버지'처럼 특정 인물이 아닌 일반명사 앞에 고(故)자를 붙여서 쓸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
답은 '고(故) 외할아버지 명복을 빕니다'나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고(故)와 고(古)의 차이도 알아봅니다.
언어란 게 사는 일상의 관습 결과물이란 점에서 사람들이 평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고, 이런 질문에는 용례(쓰이는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빠릅니다.
고(故·죽다·연유)라고 하면 '죽다'이고, 고(古·옛)는 '옛날'입니다.
고인(故人)이라고 하면 '죽은 사람'이고, 고인(古人)이라면 '옛날 사람'입니다.
우스개로 '옛날 사람은 다 죽었고, 따라서 죽었으니 옛날 사람이 된 게 아니냐'라고 하면 '죽은 사람'='옛날 사람'으로 의미가 같아지지요. 하지만 이는 문장의 의미가 그렇다는 것이고, 두 한자의 사전적인 뜻엔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 고사(故事)라고 하면 '전해내려 오는 유래가 있는 일'이지만 고사(古事)는 '옛 일'일 뿐입니다.
이 말고도 '오래됨(old)'으로만 대별해보겠습니다.
고(故)는 오래된 것이지만 현재와의 연관이 더 강조된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고(故)는 지금부터 지난 과거의 시간을 이르는 말로 신(新)의 반의어입니다.
그래서 고우(故友)는 '옛날부터 오래도록 사귀어 오는 벗'입니다. 달리 '죽은 벗'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고(故)는 회초리로 때려(攵) 옛날(古) 풍습으로 되돌리려는 고의성을 가진 행동에서 ‘지난 시간’의 뜻을 가졌지요.
예시로는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에 나오는 고(故)를 들 수 있다. 풀이는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고(故)는 간혹 옛 시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반면 고(古)는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가 중시됩니다.
고(古)는 오래전 과거이기에 금(今)의 반의어입니다. 고(古)는 10(十)시간 동안 입에서 입으로(口)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예시를 들면 공자의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에서 고(古)의 뜻이 여기에 속합니다. 풀이하면 '옛 것을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한다'입니다.
따라서 고금(古今)은 '예 고'와 '이제 금'입니다. '옛날과 지금'이란 뜻입니다.
고인(古人)는 '옛날 사람'입니다. 단순히 옛날이란 시점에 살았던 사람을 지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