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 살만한 요즘은 '건강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건강 상식과 식품은 범람하고, TV에선 의사 등 전문가들이 자기 말대로 안 하면 곧 큰병에 걸릴 듯 엄포를 놓습니다. 이즈음 옛 선인들의 건강 지혜를 찾아봄직합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상식을 연중 기획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서 적시한 오미(五味), 즉 쓴맛-신맛-짠맛-단맛-매운맛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탐방하고 있습니다. 이중 마지막으로 매운맛을 살펴봅니다.
매운맛은 다른 미각과 달리 맛이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주관상 맛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맛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감에 감칠맛으로 바꿔 넣어야 한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 매운맛을 언급한 것은 것은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마늘을 비롯 생강, 겨자, 홍화씨, 달래, 산채고추 등을 음식에 넣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고추가 한반도로 들어온 시기가 17세기이니 동의보감을 쓰는 데 영향을 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매운맛은 미각신경을 자극하는 다른 맛과 달리 촉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주는 맛입니다. 쓴맛도 통증을 주지만 매운맛 정도는 아니지요. 또 매운맛은 혀가 아닌 입안 전체에서 느끼는 맛입니다.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인 성분은 '캡사이신'입니다. 캡사이신이 많이 함유된 고춧가루를 혀를 중독시키는 '붉은 마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운맛은 전체적으로 몸의 혈(血)과 기(氣)의 순환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몸에 열을 나게 하며 땀을 통해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줍니다. 따라서 식욕도 높여주지요.
참고로 혈기(血氣)란 '생명을 지탱하는 피와 기운'입
니다. "혈기가 왕성하네"란 말에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매운맛은 또 몸 안에 있는 진액(津液·몸 안의 액체)을 골고루 퍼지게 해 몸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다만 ▲진액이 적은 경우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린 뒤 몸 속에 열이 있는 경우 ▲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엔 매운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의보감엔 매운맛은 장기 중 폐(肺)에 더 많이 작용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매운맛은 폐로 들어가 기운을 돕고, 가래를 삭히고, 기침도 멎게 해주는 등 호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흡이 느린 사람'이 매운 음식을 더 좋아한다고도 합니다.
다만 매운맛을 너무 좋아하면 간이나 담낭이 약해져 만성피로, 빈혈증세를 겪습니다. 또 매운맛이 지나치면 힘줄과 혈맥이 상하거나 늘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동의보감엔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이 예민한 사람은 매운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을 볼 때 고통을 느껴 치질 환자는 짠 음식과 함께 절대 피해야 할 음식으로 칩니다.
매운맛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은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나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사교적이긴 한데 남의 창찬 말에 약하고, 겁도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매운맛을 좋아하니 매운맛에 대한 상식울 더 알아봅니다. 동의보감 외의 내용입니다.
동남아와 멕시코산 고추가 우리의 청양고추보다 캡사이신 농도가 몇 배 더해 맵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들 나라보다 더 매운맛을 내는 음식이 많습니다. 쌓이는 스트레스 가 어느 수준이길래 매운 음식을 이렇게 많이 찾을까요?
위에서 언급했듯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배출하면 속이 뻥 뚫리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분명 듭니다. 지방도 분해해준다고 하지요. 또 있습니다. 매운맛 때문에 짠것을 줄인다고 합니다.
또한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혀에 통증을 주면 이를 줄이기 위해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을 분비합니다. 행복 호르몬 엔도르핀이 통증을 없애는 줍니다. 이만 보면 긍정적인 맛이지요.
참고로 매운맛을 좋아하는 지역은 중국 쓰촨성과 후난성(사천 요리와 호남 요리), 인도, 동남아, 멕시코, 중미, 남유럽(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무덥고 습하거나 우리나라처럼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인 곳입니다. 식재료가 잘 상해 매운맛으로 살균 효과와 보존성을 높이는 음식이 발달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