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요? 시장 경기 죽은 건 오래됐심더"
더경남뉴스 정기홍 기자가 27일 오후 서부경남의 중심지 진주에 있는 시장 두 곳을 찾았다. 남강 아래 위에 위치한 진주교 진주중앙시장과 천전시장이다. 두 시장은 일각에서 지적하는 경기 안 좋다는 말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중앙시장에 들르기 전에 천전시장을 먼저 찾았다. 오래 전에 죽은 상권이지만 추석 전이니 주위의 시민이 나와 제수용품 등을 사가겠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완전히 빗나간 예측이었다.
천전시장은 진주의 남부인 진주시 칠암동에 있다. 중앙시장과 더불어 해방 이후인 1945년 12월 개설돼 서부경남의 중심 시장으로서 위치를 유지해 왔다. 한동안 남부 지역 시가지 중심지인 이곳에서 청과, 곡물, 포목상, 잡화상, 식료품 등을 거래했고 귀환 동포들의 노점상을 형성했다.
당시 거래되던 물품은 주로 라이터, 헌옷, 고물기계부속품들이었다.
1950년대 당시 점포수는 79개였고 시장 부지 4396㎡(1320평)에 건평 1588㎡(477평)의 소규모 시장이었다.
이후 1986년 재건축을 했고 지금은 시장 대지 1874㎡에 1층 건물에 점포수는 80개(자영 39개, 임대 41개)가 있다. 음식 15개, 의류 21개, 신발 7개, 미곡 10개, 철물 4개, 청과 3개, 기타 15개로 의류 가게가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70대 한 여성 상인은 “요즘 추석 대목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보세요. 시장에 몇 사람이나 오가나. 그는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제사도 간소화 되고, 명절 차례도 많이 안 지내고, 경기도 어렵잖아요. 그냥 평일 같아요. 예년처럼 과일 찾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과일 장사를 하면서 올해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시민 몇 몇은 좌판 어르신이 펼쳐놓은 채소 가격을 물어보곤 발길을 얼른 옮겼다.
올해는 진주 지방을 포함한 경남에 꽃 피고 수정을 해야할 봄철에 큰 냉해를 입었다. 강추위에 꽃이 얼어붙은 것이다. 이어 한 여름 폭염과 폭우가 주기적으로 이어지면서 과일 생육이 형편 없었다.
역시 가을 수확철엔 소출이 크게 줄어 주먹만한 배 한개가 1만원이다. 사과도 한 대에 6천~7천 원 한다. 사과가 배보다 냉해 더하다.
이러다 보니 시장을 시민들도 과일 4~5개 정도만 사고선 시장을 떴다. 어쩌면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의 가격 표지판만 눈에 쏙 들어왔다.
오랜만에 시장 취재를 한 기자는 "지역의 시장 경기가 완전히 죽었다"는 말을 완벽히 인식한 하루였다.
시장에 들른 60대 후반 김 모 씨는 기자에게 "천전시장이 죽은 지는 오래됐지예. 상권이 완전 몰락해서 그렇심미더"라며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제수용품 사러 왔다는 한 아주머니도 "작년 이맘 때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요즘은 가족도 많이 모이지 않아 제사에 필요한만큼 조금만 샀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 관측 9월호 과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의 사과(홍로 10㎏ 기준) 도매가는 2만 8400원이었으나 올해 9월에는 7만 4000원으로 두 배 넘게 올랐다. 배(신고배 15㎏ 기준)도 지난해 9월 3만 2800원에서 5만 5000원으로 80% 정도 뛰었다.
곧바로 서부경남 최대의 시장인 대안동 진주중앙시장을 찾았다.
중앙시장은 조선시대의 지방장시가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 전국적인 시장의 하나다. 해방 이후 천전시장과 더불어 중앙시장의 이름을 붙였다. 시장 대지 1만 6926㎡(5083평)에 1천여 개의 점포가 있다.
중앙시장 번영회 관계자는 "새벽시장에는 야채와 생선시장이 새벽 2시부터 이뤄지고 생어시장에서는 경매가 이뤄진다"고 전했다.
지금의 LG그룹과 GS그룹을 일군 구인회 창업주가 이곳 중앙시장에서 포목상을 해 돈을 많이 벌었다. 시장의 역사가 오래돼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포목점 등이 제법 된다. 삼베와 모시옷 등을 파는 동운상회의 경우 60대인 강원길 대표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4대째 가게를 운영 중이다.
기자는 학창 시절 추억을 되새기며 일부러 중앙시장 정문 입구 쪽으로 도착했다.
입구쪽 전체 분위기는 옛 건물과 상호가 아직 남아 추억을 기억할 수 있었다.
시장 정문을 들어서 천장을 돔으로 리모델링 한 중앙가로길을 찾았다. 천전시장과 중앙시장의 썰렁함과는 달리 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와 별 다름이 없는 분위기였다.
6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채소가게 주인은 얼른 팔려는 지 세일에 나서고 있었다. 정구지(부추) 한 단에 3천원에 가져가라며 손님 발길을 붙잡는다. 그는 "명절이라고 별 다르지 않다. 대목을 잊은지 오래고, 요즘은 일반 손님만 바라본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과일 장사를 하던 60대 강 모(여) 씨는 "올해는 유독 몇 개만 사 간다"며 "서울에 있는 아들이 '해마다 추석 때면 먹골배를 선물로 하던 친구가 올해는 못 하겠다 했다'고 하더라"고 과일값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남녀 젊은이가 지나기에 물었다. "무엇을 사려고 시장에 들렀냐"고 했더니 "사려고 시장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시장을 가로질러 음식점을 가고있다"고 했다. 이들 남녀는 "요즘은 명절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고, 연휴 때 먹을 것은 대형마트 등에서 사둔다"고 전했다.
한복과 일상복을 전시 판매하는 포목점으로 들어섰다.
내심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들르던 한복 가게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한복 가게가 많아 한복 코너는 꽤 넓었다. 결혼은 줄었지만 지금도 누구나 고운 한복 한벌쯤은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성인식(18세) 등 성인이 됐을 때 상징 선물로 한복 한 벌을 챙겨주는 가정이 많을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시장 중앙 통로를 거쳐 시장 가장자리로 발길을 옮겼다.
이날 시간이 늦어 인근 대형마트엔 들르지 못했지만 가끔 들르는, 대형마트의 북적임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날 구시가지에 있는 두 시장의 명절 대목의 현주소는 신시가지로 이동한 상권 침체의 영향이 가장 크다. 여기에다가 명절을 일반적인 휴일로 여기는 명절 트렌드도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추석을 앞두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수산물 소비 침체와 경기 불황 타개책으로 각종 지원할인 행사를 하고 있음에도 전통시장의 추석 경기가 썰렁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추석 대목은 없심더. 앞으로도 없을 낌미더. 과일 등 제수용품만 쪼깨 사가는 경우는 있을까···"
진주중앙시장의 한 상인이 기자에게 덤덤하게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