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날강도'의 '날'은 무슨 뜻?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2.23 17:40 | 최종 수정 2024.02.24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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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헷갈리는 낱말과 문구를 찾아 독자와 함께 풀어보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도편달과 함께 좋은 사례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안면몰수성 강도짓을 들어 "순(순전히) 날강도 짓"이라고 말합니다.
강도짓이란 남의 것을 강탈해가는 행동입니다. 강도(強盜)의 사전 뜻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이나 행위'입니다. 날도둑이나 날도적, 날도적놈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지요.
날강도는 어떤 수준의 강도일까요? 날은 순수 국어이고 강도는 한자입니다. 즉, 날강도(強盜)로 표기됩니다.
날강도의 뜻을 제대로 알려면 '날'의 의미와 유래를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날강도는 우리말이 아니고 영어에서 파생된 표현입니다.
이 말은 잘못된 세금 제도가 파생시킨 문제에서 유래했다고 전합니다. 내용이 흥미롭네요.
이유를 알아봅니다.
햇빛은 만물이 차별 없이, 그리고 공짜로 쬡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금을 매긴다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창문세(window tax)’라는 세금을 도입했습니다. 창문이 많는 집은 세금(보유세)을 많이, 적은 집은 세금을 적게 매겼답니다.
햇빛을 쬐는 것에 세금을 매긴 겆니다. 햇빛의 양을 창문의 수로 계산한, 엉뚱하고 황당한 제도이지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세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창문을 하나씩 벽돌로 막기 시작했습니다. 임대업자들도 세금을 적게 내려고 창문을 없애고 임대를 했습니다.
창문 없는 건물에서 사는 서민들은 하루종일 햇빛을 보지 못해 우울증 등으로 많은 피해를 본 건 당연랬습니다.
이 제도는 무려 150여 년간이나 유지됐습니다.
당연히 영국의 주택 외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영국에서 이 시대에 지어진 건물 중 창문 없는 건물이 많다고 합니다.
날강도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창문세를 영어로 표기하면 ‘daylight robbery’인데, 우리말로는 ‘햇빛 강도질’이란 뜻입니다. 이것이 영한사전에서 ‘날강도’나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 정도로 번역된 것이지요.
왕조가 공짜인 햇빛을 도둑질해 간다고 해서 생겨난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