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차 병원(중형 병원) 중 전문성을 갖춘 병원들에 대해 상급 종합병원(3차 병원) 만큼 의료 수가를 높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형급을 비롯한 중소·전문 병원을 키워 ‘빅5′에 의존하는 기존 의료 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지역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 의료에 투자를 확대하고,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하고 합당한 보상 체계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또 “특히 현재도 상급 종합병원 수준으로 전문성을 갖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강소 전문 병원들이 있다”며 “정부는 병원 규모가 아니라 실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전문성 갖춘 강소 전문 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재 상급 종합병원들이 전공의 이탈로 수술·입원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그 공백을 2차 병원들이 메워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증 환자도 상급 병원에 몰리는 만성적인 기형적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중형·전문 병원을 키워야 한다”며 “빅5 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전체 의사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데, 중형·전문 병원을 키우면 전공의 이탈로 의료 현장이 마비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병원 규모에 따른 현재 수가 체계를 실제 각 병원의 실적 등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한 총리는 전날엔 뇌혈관 질환 전문 병원인 서울 명지성모병원을 찾아 “규모가 작은 전문 병원도 실력이 있으면 상급 종합병원만큼 수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전문 병원이 수준 높은 진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검토하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대국민 홍보를, 소방청은 일선 구급요원과 119 구급상황실 등에 뛰어난 진료 실적을 보인 전문·강소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와 교육을 확실히 하라”고 했다.
한 총리는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가 붕괴해 전 국민이 이른바 ‘빅5′ 병원에 가는 모순을 해소하고, 국민 누구나 ‘우리 동네 빅5′를 믿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인천 계양구에 있는 중형 병원(326병상)인 인천세종병원 고도의 심장 수술을 하루 2~4건씩 한다. 이 병원은 심장 분야만큼은 서울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병원이 넘기는 중증 환자도 있고, 심근경색 등 응급 환자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올해 2월까지 7년간 무려 1340건의 심장 수술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은 “심장이식·인공심장 등 수술 건수 기준으론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며 “수술 후 생존율은 100%”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인천세종병원에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없다.
이처럼 2차 병원은 전공의 없이 전문의로만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병원은 전문의 90여 명이 간호사 등과 함께 하루 1600명 넘는 환자를 보고 있다. 중환자실 당직도 전문의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심장이식센터·뇌혈관센터·내과센터·외과센터·소아청소년센터 등 21개 전문센터를 두고 지역·필수 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병원 운영은 쉽지 않다. 현재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 체계가 병원 규모가 클수록 많이 주는 구조여서 같은 진료를 해도 상급 종합병원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지역의 ‘강소’ 2차 병원 상당수는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의를 많이 채용하기 어려워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손발 역할을 하는 전공의가 대형 병원과 분원으로 자주 이직한다.
인천세종병원의 경우 ‘심장 사관학교’라는 달갑지 않은 말까지 듣는다.
그동안 정부 지원이 대형 병원에 집중되면서 2차 병원들은 소외돼 의료진이 지역·필수 의료에서 마음 놓고 환자를 볼 수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