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속담 순례]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36)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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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21:22 | 최종 수정 2024.06.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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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하지 절기(21일)가 며칠 지났습니다. 하지 무렵은 한 해 중에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 태양열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따라서 더위가 본격화 하는 철입니다.
한 달 전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벼가 뿌리를 내려 잎이 파랗게 변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는 논에 한한 것이고 밭에는 또다른 작물 세상이 펼쳐집니다.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는 하지 절기에 밭작물에 더 맞는 속담입니다. 보리의 경우 논에 심어 수확을 하지만 대체로 밭에서 재배합니다. 감자는 밭작물이지요.
감자의 싹은 하지가 지나면 죽어 빨리 캐야 하고, 보리도 말라비틀어져 알곡이 잘 배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자를 캐고 보리 벨 때를 지나 사람으로 치면 환갑 나이가 됐다는 뜻입니다.
예전 평균수명이 40대 초반일 때 60대이면 기력이 쇠하는 나이었지요. 늙어 움직이지 못하는 부모를 지게에 지고 인근 산에 구덩이를 파 모시다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르는 '고려장(高麗葬)'이란 게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 해서 고려장으로 불린 설화 같은 풍습입니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생각하면 무척 슬퍼지는 이야기입니다.
감자를 많이 재배하는 강원 평창에서는 하지 무렵에 첫 감자를 캐 전을 부쳐 조상께 올리는데 이를 ‘감자 천신(薦新)한다’고 말합니다. 또 첫 감자는 밥에다 넣어 먹어야 다음 해 감자가 잘 열린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햇감자로 점을 부쳐먹는데 캔 지 얼마 안 된 감자 맛은 상대적으로 좋습니다.
참고로 요즘은 엄청 빨라졌지만 예전 남부 지역에서의 2모작 모내기는 단오(음력 5월 5일, 올해는 양력 6월 10일) 전후에 시작돼 하지 무렵에 끝났습니다. 이 때문에 보리는 하지 이전에 베어야 이모작 모를 심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 전 삼일, 후 삼일'이라고 해 이때 이모작 모를 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 속담 중에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것도 있는데 이 무렵의 날씨가 좋아 모든 식물을 왕성하게 길러준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