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눌(8일)은 한해 24절기 가운데 17번째인 한로(寒露)입니다. 한로의 한자는 찰 한(寒), 이슬 로(露)로, '찬 이슬'입니다. 이때부터 아침나절엔 추위를 느끼고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지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자리를 합니다.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해 예부터 "절기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로는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 상강과 함께 가을 절기에 해당하지만 늦가을 절기입니다. 공기가 점점 선선해져 이슬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올해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었지요. 열대야로 지칠대로 지치기도 했습니다. 추석(9월 17일)엔 진주의 낮 기온은 무려 38도를 찍었습니다. 한여름보다 더 높았지요. 늦더위가 지속되면서 수확을 앞둔 농촌에선 벼멸구가 기승을 부려 피해가 막심합니다.
2년 전인 2022년 한로엔 진주의 아침최저기온이 11.9도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아직도 17도로 높습니다.
중국에서는 한로 15일 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누어 시절을 논했습니다.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중후(中候)에는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오며, 말후(末候)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조개의 산란기가 양력으로 10~ 12월입니다. 다만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는 봄철인 4~6월입니다.
조선 세종 때 출간한 고려사(高麗史)에도 한로('寒露) 구월절(九月節) 태구삼(兌九三) 홍안래빈(鴻鴈來賓) 작입대수화위합(雀入大水化爲蛤) 국유황화(菊有黃華)'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를 풀이 하면 '한로는 9월 절기로, 괘(卦)는 태(兌) 구삼(九三)이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 차후에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 말후에 국화꽃이 누렇게 핀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기록과도 비슷합니다.
참새가 조개가 된다는 것은 날이 차니 참새가 줄고 조개가 산란기를 맞아 많아진다는 뜻이 아닌가 싶고, 시절의 바뀜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농촌은 오곡백과 수확에 무척 바쁩니다. 벼를 거둬들이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밭에 있는 깨를 쪄서 말립니다.
봄철의 화사한 꽃만큼 아름다운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와 같은 겨울새가 자리바꿈을 하는 때도 이 무렵입니다.
한로는 중양절(重陽節)과 비슷한 시기에 들 때가 많다고 합니다.
중양절은 한로와 비슷한 때인 음력 9월 9일에 드는 세시명절인데 9는 원래 양수여서 양수가 겹쳤다는 의미로 중양(重陽)이라 합니다. 이 날은 계절 음식을 준비해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여염집 가정에서는 국화전을 붙여 먹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옛 시인 한시(漢詩)에서는 중양절 풍속인 머리에 수유(茱萸·쉬나무 자주색 열매)를 꽂거나 높은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수유의 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은 양(陽)색으로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0m까지 자라는 쉬나무는 전국의 낮은 산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자라며, 옛날에는 머리에 바르는 기름을 얻기 위해 마을 주변에 많이 심어 길렀다고 전합니다.
한로 무렵에 일반 백성들은 한로와 상강 무렵에 시식(時食), 즉 계절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고 전합니다.
중국 명나라 약초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꽤 좋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을철에 누렇게 살찌는 고기라 해서 추어라 붙였겠지요.
추어는 푹 삶아 뼈까지 먹으면 골다공증에 좋다고 알려져 있고, 세균 저항력도 높여 환절기의 감기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지금에 먹으면 좋은 음식이네요.
한로와 관련한 속담은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는 강남으로 가고, 기러기는 북에서 온다', '가을 곡식은 찬이슬에 영근다', '갈바람이 불면 곡식은 혀를 빼물고 자란다' 등이 있습니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는 제비는 음력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강남(중국 양쯔강 이남)에서 왔다가 한로가 지나 선선해 지면 강남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또한 '가을 곡식은 찬이슬에 영근다'는 가을에 이슬이 내리면 곡식이 단단하게 여문다는 말입니다.
'갈바람이 불면 곡식은 혀를 빼 물고 자란다'는 한로가 되면 가을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내립니다. 반면 가을 날씨는 대체로 쾌청해 곡식들이 따가운 햇살을 받아 잘 여문다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혀를 빼서 햇살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은 속담입니다.